대충 살아도 잘 살아져요

힘 빼는 데 진심인 사람의 삶

by 해랑

저는 평소에 대충 사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막 엉망으로 산다는 뜻은 아니고요, 딱 힘을 쓸 데만 쓰고, 나머지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살아요.


예를 들면 빨래건조대에 있는 빨래 절반은 그냥 걸려 있는 그대로 입어요. 굳이 칼각으로 접어서 넣었다가 다음날 다시 꺼내 입는 게 저에겐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요. 옷장 속에 들어간 빨래들도 예쁘게 접힌 적이 거의 없어요. 거의 다 들쑥날쑥한 크기로 돌돌 말려들어가 있어요.


“도둑이 든 건가, 왜 이렇게 쑤셔 넣어?”

가족들에게 잔소리도 여러 번 들었지만 저는 항상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다시 입을 건데 왜...”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그래도 ‘인간답게’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효율적인(?) 사람이죠.


또 저는 커튼 핀 하나하나 끼우다가 인생을 다 쓴다고 생각해요.

원래 전에 살던 집에서는 거실에 커튼을 달았었거든요. 근데 먼지가 너무 나서 세탁하려고 보니까 레일에 달린 핀을 하나씩 빼야 하잖아요? 그걸 하고 있는데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 그냥 시간이 새어 나가는 기분이었어요. 세탁은 했는데 도저히 핀을 다시 다 끼울 자신이 없어서 결국 커튼 없이 살았어요. 햇살을 즐기면서요.


남편은 잔소리를 해댔죠.

“햇빛 너무 들어와! 다시 달자!”


그리고 저는 받아쳤어요.

“따뜻한 햇살을 느끼니 얼마나 좋아, 먼지도 안 나고”


반듯하고 깔끔하고 예민한 남편은 날 볼 때마다 ‘저 인간은 왜 저럴까’ 하는 표정을 지어요. 이번에 이사 온 집에서도 남편이 커튼을 달자고 제안해서 제가 선언했어요.


“오케이. 대신 한 번에 쑥 끼우는 봉커튼으로 산다 “


남편은 기가 막혀하더라고요.

“아니 제발 커튼 핀 끼우기 정도는 하고 살자...”


생각해 보니까 제가 대충 사는 건 게으름이 아니었어요. 에너지를 쓸 곳과 안 쓸 곳을 되게 명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저는 외식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좋은 재료만 고르고 골라서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는 걸 좋아하죠. 대충 살면서도 아이 식단은 탄단지 완벽하게 맞춰요. 등원준비하느라 바쁜 아침에도 예외는 아니에요.


그리고 운동할 때는 하루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그 시간만큼은 제 모든 힘과 정신력을 다 쏟아내요. 최선을 다해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요. 실패한 동작은 이 동작을 성공할 수 있을지 해부학적으로도 접근해 보며 고심하지요.


삶이 그렇더라고요.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금방 번아웃 오고 아무것도 즐길 수가 없어요. 분명 무언가 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다른 것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지요. 근데 힘쓸 곳을 정확히 알고 나머지는 대충 넘기면 삶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저처럼 게으르게 대충 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에너지를 쏟고 있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건 아이와 역할놀이를 할 때 일수도 있고 키우는 화분에게 꼬박꼬박 물을 주는 일 일수도 있습니다.


자기 전 내일 할 일을 생각할 때, 또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할 일을 생각할 때 가장 잘하고 싶은 일, 에너지를 쏟고 싶은 일 한 가지만 정해 보세요. 나머지는 대충 넘겨도 분명히 잘 살아질 거예요.


저는 오늘도 커튼 핀은 영원히 포기했고 빨래는 대충 말아 넣고 바닥청소는 아주 가끔만 하고 살아요. 에너지와 행복을 동시에 충전 중이지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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