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35-36주 차] 자책감을 이겨내면서
다소 격하게 싸운다는 표현을 썼다. 사실 모든 엄마들이 싸운다.
한 생명이 탄생하고 그를 올바른 인격을 갖춘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내는 데에 전투적인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보육하는 엄마와 일하는 엄마는 각자의 전투 현장에서 치열하게 이겨내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다만, 나의 처지가 워킹맘이기에 주어를 '워킹맘'으로 한정한 점 참고 바란다.
워킹맘은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2개의 시간으로 나뉜다.
[복직 전]과 [복직 후].
계획형인 나는 아래와 같은 목표가 있었다.
[복직 전]
1. 어린이집 확인
2. 돌잔치 준비
3. 아이와 처음 만나는 4계절 추억 만들기
4. 미뤄둔 글쓰기
5. 복직하면 못 갈 거 같은, 아이 맡기고 배우자랑 힐링여행 가보기
[복직 후]
1. 맡은 업무 잘 해내기
2. 아이와 최대한 양질의 시간 보내기
위 내용 중 당연 으뜸은 복직 후 가장 중요한, 아이 봐줄 곳을 찾는 것.
친정에서 아이를 봐줄 순 있지만 할머니의 건강과 체력, 아이의 다양한 체험 활동을 고려하여 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출생신고 직후부터 어린이집을 신청했고, 3월 혹은 9월 신학기에 TO가 있어 입소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3월로 신청해 두었다.
그리고 운 좋게 혹은 예상치 못하게.. 집 앞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0세 반 입소가 가능했다.
올해 하반기 복직이니 복직 전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길 원했지만, 이렇게 빨리 어린이집에 맡길 거란 생각은 못했다. 사실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넣었던 것인데 덜컥 붙은 것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입소 직전까지 입소를 포기할까도 걱정했다. 8개월 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큰 아이들에게 치이거나 다칠까, 낮잠을 자지 않는다고 혼날까 등등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아이가 잘 적응할 지도 고민되어서 아이의 담임선생님과도 긴밀한 상담을 했고, 적응기간을 길게 가졌다.
가장 늦게 등원해서 가장 일찍 하원하는 막내 아이.
그렇게 2개월 적응기간이라 생각하며 잠깐씩 등원을 했고 우리 아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잘 먹고 잘 놀고 심지어 잘 낮잠 자기까지.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했다.
그간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국공립 시설이라 깨끗했고, 장난감이 많지 않아도 놀만한 것이 꽤 있었다. 담임 선생님도 괜찮았고 0세 반 학우와 엄마들도 전부 괜찮았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적응을 쉽게 잘해주었다. 키즈노트에 찍힌 활짝 웃는 아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절로 날아갈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가장 큰 단점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쉽게 아프고 또 함께 아프다는 것.
[나의 해방일지] 중 이런 장면이 있다.
"당신 톡이 들어오면 통장에 돈 꽂힌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나는 이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아이가 티 없이 밝은 미소를 보여줄 때마다 느끼기 때문이다.
"육아휴직동안 내 월급은 없다 했더니, 네 웃음이 내 월급이었구나~!" 하며 꽉 안아준다. :)
이렇듯 웃음 한 번에 녹는데, 울음 한 번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할까.
심지어 아파서 운다면. 워킹맘은 죄책감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 아이는 한 달 중 건강한 날이 며칠 되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한 달에 3~5번 소아과 방문은 당연했고, 콧물 빼주는 노시부와 코미시럽도 필수, 해열제는 선택이었다.
최근에는 유행하는 열감기 때문에 40도까지 올라 엉덩이 주사를 맞았고, 그 감기를 부모와 할머니에게도 옮기기도 했다.
보통 어린이집 간 첫 해 1년 동안은 아프고, 2~300개의 병에 걸리고 나아야 면역력이 생긴다던데..
차라리 복직 전에 조금이라도 아이를 돌봐줄 수 있어서 다행인 거라 애써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이것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전부 무너져 내린다.
다 내 탓 같았다.
괜히 어린이집을 보내고 일을 하고, 내 새끼를 내가 돌봐야지 누구 손에 맡기나 싶었고, 끊임없이 자책했고 죄책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당장이라도 퇴소하고 싶었고 일도 그만두려고 했다. 아빠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아프면서 크는 거라 말하지만, 엄마는 울 수밖에 없다. 아기의 건강이 보통은 엄마의 탓이 되기 때문에.
사실 따져보면, 가족을 위해 엄마 역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함께 부양하는 것인데도 워킹맘은 언제나 괴롭다. 워킹맘의 가장 큰 적은 '자책(죄책감)'이란 말이 있다.
나 역시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그만 떨어져 나가길 바라지만 더욱더 강렬하게 내 뒷덜미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차라리 내가 아프거나 내 문제라면 내가 견딜 수 있는 선에서 간편한 선으로 타협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자책, 출근하면 늦은 저녁 퇴근해서야 아이를 조금 본다는 것에 대한 속상함,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죄책감.
죄책감에 몸서리치다가 오지 않는 잠을 이부자리 옆으로 밀어 넘기고 일어났다.
새벽 한 시. 아이의 방 CCTV를 확인한 후 잠든 남편과 아이를 두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근처의 다른 어린이집도 한 바퀴씩 둘러봤다.
만약 지금 퇴소한다면, 나중에 이곳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곳이 지금 다니는 곳보다 더 좋은가.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계속 품고 있어야 할까. 영원히 아이를 집에만 둘 순 없는데.. 언제쯤 보육기관을 보내야 할까. 그때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을까.
어찌 되었든 아이는 클 것이고 아픈 건 낫고, 일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고, 다니고 싶으면 다니면 된다.
문제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 과정을 견디는 사람 마음이 심란할 뿐.
그래서 관점을 바꿨다. 다니는 어린이집 자체에 문제가 있는가?
기관, 시설, 원장, 담임, 식단, 보육 커리큘럼, 키즈노트 등 어린이집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매월 촉감놀이, 볼풀놀이, 공룡행사, 생일파티, 봄꽃축제 등 다양한 체험 행사를 볼 때면 어린이집을 잘 보냈단 생각도 했다.
심지어 아이에게 생애 첫 카네이션을 받을 땐 감동과 기쁨이 일렁였다.
(물론 선생님이 다 해주신 것이지만 ㅎㅎ, 부모님 응원 커피차도 받았다 :))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사람이 거닐지 않는 밤거리를 봤다. 찬바람에 머리가 식고 복잡한 머리가 정리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양손 모두 얻는 선택은 없지만, 워킹맘에게 포기란 없다. 어떻게든 일과 가정을 모두 다 잘 해내려 애쓴다.
양손에 하나씩 쥔 일과 가정(특히 육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강해져야 할 때였다.
우연히 인터넷에 도는 짤을 본 적 있다.
어릴 적 소아암으로 입원한 여성이 병원에서의 오랜 기억이 행복하게 남아있다는 에피소드.
되돌아 생각해 보니, 엄마가 애써 밝은 척하면서 아이가 겁먹거나 힘들지 않도록 캠핑 온 것 같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
분명 이 엄마는 아이가 보지 않는 한편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견뎠을 것이다.
이렇듯 엄마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치열하게 최선을 다한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지만 본능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전투력. 엄마는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발목을 잡는 자책과 싸우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기까지.
어린이집 최소 출석일 11일을 출석하는 게 어려울 만큼 자주 아파 가정보육을 한다.
이제 나는 죄책감에 눈물 흘리며 후회와 퇴사 고민을 하진 않겠다. 대신에 아이의 징후와 반응에 좀 더 민첩하고 민감하게 대응하여 병원 약 처방을 제 때 해주고, 곁에 있는 동안 눈 마주치고 안아주고 무한한 사랑으로 반응해 주며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와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이의 귀중한 웃음(내 월급ㅎ)을 잃지 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