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3-34주 차]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순간들
순식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부부의 아이와 우리 아이가 처음 만난 날.
인사를 시키며 알아가던 중, 순식간에 뻗은 상대 아이의 손이 우리 아이의 뺨을 잡아챘다.
바로 떼어놓긴 했지만, 아팠는지 우리 아이는 울었고 상대 아이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어린아이들끼리 부딪히면 쉬이 발생할 수 있는 순간.
일단 나는 내 아이를 안아 달래며 괜찮다고 해주었다.
"괜찮아~"
하지만 그 순간부터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정말 괜찮을까.
집에 돌아오면서 카시트에 누워 잠든 아이의 붉어진 뺨을 보며 생각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가 정말 괜찮다고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괜찮다고 일러주었다.
그게 맞을까. 곱씹을수록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재우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며 내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살폈다.
잘못을 모르던 상대 아이의 순진무구한 표정 때문이 아녔다.
그쯤의 아이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지만, 상대 아이에게 일러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것은 1차적으로 상대 부모의 몫이다. (상대 부부도 아이를 제지하고 잘 일러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과 내 자식의 훈육, 우리 부부의 태도를 정립하는 등 우리 가족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 그런데 무언가 놓친 기분이었다. 마침 손톱 사이에 낀 이물질처럼 따끔하니 귀찮고 불편하면서도 쉬이 넘기기 어려운 마음. 이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답을 깨달았다.
너무 쉽게 '괜찮다'는 말을 대신해 준 것.
이것이 문제였다.
사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는 말을 한 건 아녔다.
당장의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 상대 부모의 미안함을 달래주며 어른으로서 짐짓 별 것 아니다 식으로 쉬이 넘어가는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괜찮다'는 말이 나온 건 반사적이고 본능적이었다.
항상 남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싸우지 않고 조금씩 서로 양보하며 살라는 가르침으로 인한 것.
이는 '나 자신'이 바르게 잘 살기 위한 내 부모의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아녔다.
큰 상처나 흉이 지지 않았지만 아이의 놀란 마음과 상처는 흉터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의사표현을 못하는 아이지만, 정말 아이의 몸과 마음이 괜찮은지는 살피지 못했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대신 괜찮다고 해줄 수 없는 거였다.
사실 지금껏 이런 불편한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자식일 때는 몰랐던 부모의 고민과 선택들.
나 하나 속 끓이거나 불편함을 참고 말 때는 쉬이 그러했다. 내 마음을 내가 잘 지킨다면 남에게 너그러워도 내 마음이 다칠 것 없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 자식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면..
내 멋대로 내 자식도 나처럼 평화로움을 지키기 위해 참고 지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보니 때로는 억울한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상처받는 때도 있었고..
상황에 따라 선택의 방향과 그 무게가 다르지만, 단편적으로 마냥 좋게 좋게 만 참고 지내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서 제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과 평화롭게 잘 살되 갈등은 원만하게 해결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한다.
그렇다면 이를 염두에 둔 엄마로서, 내 아이가 꼬집힌 순간 다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1) 아이들을 분리시키고
2) 내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확인하고
3) 놀란 아이의 마음을 진정하며 괜찮은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4) 괜찮지 않더라도 그 마음 그대로 존중해 주며 위로의 포옹을 해줄 것이다.
아직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큰다면 얘기를 나눠볼 수도 있다.
얼마나 놀랬고 얼마나 아픈지. 이제 괜찮다면 친구의 사과를 받고 싶고 친구와 다시 놀고 싶은지. 너 역시도 앞으로 친구들과 놀 때 조심해야겠다든지.
이 맘 때 아이들은 자기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센지 모르고 상대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내 아이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의도치 않게 아프게 꼬집을 수도 있고. 혹시 몰라 손톱도 짧게 자른다.
갈등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부모도 조심하되, 만약 발생했다면 제대로 일러주고 지켜주어야 한다.
가만히 누워 있는 신생아 시절 단순히 먹고 자고 놀 때가 좋았던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관계를 맺으며 커 가는 자식에게 '엄마'는 계속 고민하고 교육해야 한다.
어떤 태도로 내 자식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줄지에 대해서.
우리네 부모들처럼, 마냥 친구와 사이좋게만 지내라면서 싸우지 말라고 중재하거나 아니면 내 아이의 마음을 우선하여 존중과 지지를 해주거나. 물론 한 편에 치우치기보다는 중도의 입장에 서서 조화롭게 잘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삶도 과연 동일할지는 알 수 없다. 살면서 함께 그려야 하는 그림처럼 완벽한 정답 대신에 아이에게 알맞은 답을 찾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그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아이를 돌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노력은 아이 대신해서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 것. 대신 이렇게 위로해 주기로.
'괜찮아질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