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31-32주 차] 낳거나 묶어야 끝나는 고민
나는 외동으로 자랐고, 배우자는 2남의 첫째로 자랐다.
어릴 적 외롭게 자란 기억 때문에 내 자식은 꼭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시대.
애 하나 낳는 것도 많은 시대다.
특히나 자식 1명 잘 키우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내 걱정이 많은 친정엄마는 지금 아기만 잘 기르며 셋이 행복하게 살라 했다.
아들 둘을 잘 길러낸 시어머니는 자식이 둘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아기가 혼자 노는 것을 보면 예전의 내가 생각나서 안쓰럽다가도
여자 외동에 비해 남자 외동은 외로움을 덜 탄다는 얘기를 들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특히나 남자의 경우, 사춘기가 오면 보통 엄마의 품을 벗어나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막상 둘째를 낳아도 첫째와 둘째가 잘 지낼 지도 고민이다.
외동으로 자란 나는 형제의 삶을 이해할 수 없고,
형제로 자란 배우자는 외동의 삶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외로움은 남에게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외로움을 핑계 삼아 형제를 만드는 것이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게다가 첫째와 둘째의 터울, 경제적 고민, 부부의 체력과 시간, 나의 몸과 커리어까지.
포기할 것이 더 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둘째 출산 계획에 대해 선뜻 찬반도 실행도 쉬이 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만의 체크표를 정리해 봤다.
불쑥불쑥 둘째의 욕심이 생길 때마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현재를 바로 보게 해주는 지표처럼 말이다.
이는 내게 마치 [인셉션]에서의 토템인 팽이와 같다.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해 주는 주요한 장치.
<나의 둘째 선택 체크 리스트>
1. 형제의 조화로움 : 둘째와 첫째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괜찮을까?
2. 첫째의 외로움 : 둘째가 원하는 성별이 나오지 않더라도 괜찮을까?
3. 둘째의 존중 : 덤으로 키운다는 둘째가 아니라, 첫째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둘째에게도 줄 수 있을까?
4. 시간 : 부부의 시간, 내 시간을 지키면서 첫째와 둘째에게도 최선의 사랑을 줄 시간이 있을까?
5. 경제력 : 외벌이로 4인 가족이 원하는 만큼 잘 살 수 있을까?
1. 형제의 조화로움 : 둘째와 첫째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괜찮을까?
2. 첫째의 외로움 : 둘째가 원하는 성별이 나오지 않더라도 괜찮을까?
아이의 성별은 부부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1, 2번은 우리의 능력 밖의 영역이다.
대신에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성별은 50 : 50이기에.
첫째와 둘째가 사이좋게 잘 지내려면 보통 같은 성별인 게 좋은데, 우리 집 첫째는 남아이다.
아들이 둘인 엄마의 삶은.. 가녀리고 차분한 여성이 파이팅 넘치게 소리칠 수 있는 엄마가 된다는데.
기르기 나름이겠지만, 보편적인 아들 둘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전적 통계로 볼 때, 양가에서 여아보다 남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확률적으로 둘째도 남아가 나온다면, 아들아이 둘이 재밌게 잘 놀긴 할 거 같다.
엄마의 피는 바싹 말라가겠지만..ㅠ
하지만 둘째가 여아라면.
외동과 형제로 자란 우리 부부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남매 관계'라 걱정은 되지만, 엄마-딸 아빠-아들이 친하게 지내며 함께 소통하고 사랑한다면 조화로운 가족이 될 거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여자의 일생/남자의 일생을 먼저 살아본 엄마와 아빠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믿기에.
나 역시도 친정엄마와 평생 친구처럼 모든 일을 터놓고 지내고 의지하며 살고 있다.
3. 둘째의 존중 : 덤으로 키운다는 둘째가 아니라, 첫째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둘째에게도 줄 수 있을까?
4. 시간 : 부부의 시간, 내 시간을 지키면서 첫째와 둘째에게도 최선의 사랑을 줄 시간이 있을까?
5. 경제력 : 외벌이로 4인 가족이 원하는 만큼 잘 살 수 있을까?
이는 부부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최선을 다해서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때에 사랑을 듬뿍 주려면, 커리어의 단절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제 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추스를 수 있도록 부모는 양육에 최선을 다해야 할 테니 말이다.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아이를 챙겨 두 발로 서고 뛰고 훈육하고 성장시키는 전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의 애정 어린 시간이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외벌이가 되는 가정이 많다.
그렇다면 소득이 줄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까.
하나를 제대로 키우기도 힘든 시대, 아이가 원하는 공부나 경험 등을 충분히 해주지 못할 때가 닥치면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게다가 자식이 하나일 때에도 부부가 함께 또는 각자 가지던 시간이 사라진 것에 대해 고민도 많았는데, 둘째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도 사치가 될 것이다.
엄마 아빠가 각자 하나씩 맡아서 전투적으로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를 들어가면 괜찮아진다지만,
우리의 가장 빛나는 30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여유로운 때의 7년을..
육아에 몰두한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미혼 남녀 친구가 자유로이 영화 보고 술 마시고 여행 다니고 취미 생활 가지며 넉넉히 살 때,
우리는 아이들을 돌보며 모든 생활 패턴과 소비, 관심사를 아이를 중심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주는 행복을 맛본 이상 둘째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은 정해져 있다.
물론 아이를 낳거나 난자/정자의 길을 묶는다면 끝나는 고민이겠지만 ㅋㅋ
그전에 적절한 육아를 위한 터울을 고민했을 때도 앞으로 길어야 3년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첫째는 순한 편인 지라, 너무나 사랑스럽고 천사같이 예쁘다.
이런 천사가 또 우리에게 와준다면 성별이든 돈이든 상관없이 당장이고 둘째를 갖고 싶을 만큼.
내 몸이 다시 망가져도 고통받아도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상수(1. 명사 자연으로 정하여진 운명.-어학사전 출처)에 의지한다.
성별, 시간, 경제력 등 위 체크리스트를 살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가 온다면 둘째 출산을 결심할 것 같다. 물론 때로는 계획되지 않는 천사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첫째 출산 때도 출산 준비 계획 3개월 전부터 미리 금주와 음식 조절을 건강하게 하고.
착실하게 배란일을 따져가며 시도한 끝에, 3개월 만에 임신에 성공한 계획형(J)이기 때문에..
둘째가 준비 없이 찾아올 거 같진 않다..ㅠ
첫째를 임신했을 때부터는 '남의 가정의 모든 임신과 출산, 육아'가 신기하고 부럽고 궁금했는데
둘째를 고민하면서부터는 '어떻게 둘째를 가질 결심/포기를 하고 낳고 생활'하는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의 몸(?)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문득문득 고민한다. 소중한 새 생명에 대한 책임과 결정을 다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지.
곤히 잠든 아이에 얼굴에 대고 작게 속삭여본다.
"너는 외동 할래? 첫째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