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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작가 May 09. 2023

부모와 부부 사이

23. [29-30주 차] 너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

결혼할 때부터 배우자에게 약속받은 것이 있다.

남은 평생 나를 'ㅇㅇ엄마' 대신 내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것.

CJENM [응답하라 1988] 중 누군가의 엄마로 기억되는 엄마. 덕선 엄마, 정봉이 엄마, 선우 엄마


우리네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잃고 누구의 엄마가 된다.

그만큼 아이가 나보다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기도.

미혼이던 시절에는, 내 이름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안타까움까지 있었다.

언제나 나만을 위해 살고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중요한 게 생겨 밀려나는 것에 대해.

내 삶의 주체성을 잃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출산 후 육아를 하다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였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안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의 차원을 뛰어넘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의 희로애락을 맛보게 했다.

연애와 결혼이 다른 것처럼

내가 나의 엄마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작하기 전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 속하는 편인데, 다른 젊은 사람들은 똑똑해서 이 모든 걸 알고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그렇기에 나의 완벽한 약점.

이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 때문에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양가의 감정 속 혼돈에 빠진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

“안 낳았으면 어쩔 뻔” 싶다가도 너무 힘들 때는 어디 도망칠 곳이 없나 속으로 울며 아이를 돌본다.


이 양가의 감정은 엄마와 여자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부부사이에도 영향을 끼친다.



매일 저녁 여유롭게 맛있는 요리를 하고 즐거운 음악 혹은 TV를 켜고

단란하게 오늘 하루를 공유하며 서로의 감정과 마음을 세세하게 살피던 신혼은 끝났다.


육아와 회사 퇴근을 하고 만난 우리 부부는 빠르게 저녁밥을 차려먹고 설거지를 하고 장난감과 매트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내일 아침 분유 내릴 준비를 한다.

그러고도 한두 시간정도의 여유가 생기면,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자유시간을 잠깐 만끽하고 밤잠에 든다.

그렇게 전투적이고 루틴 한 평일을 보내고 나면 우리의 주말은 책임 분담이 이뤄진다.

평일 내내 아이를 돌보던 엄마 대신 아빠가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고,

엄마는 아이를 보는 것 외의 집안일 대부분을 하고. 그러해도 크게 불만이 없다.

이따금씩 낮잠을 자는 여유시간에는 밀린 잠이나 개인 시간을 보낸다.

결국 내 시간을 각자 챙기면서 부부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SBS [동상이몽 2] 중 부부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오상진, 김소영 부부의 대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처럼 한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는 데에는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과 희생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밀려난 우선순위에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도 포함되어 있다.


하루에 내가 써야 할 체력과 감정은 정해져 있으니, 아이를 기르며(혹은 회사를 다니며) 각자 소모된 체력과 감정을 서로에게 쓸 여력조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부부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저녁을 차려 먹는 짧은 시간에 오늘 회사와 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육퇴 후 밀린 집안일과 설거지를 한 후에 서로의 커피를 내려주면서 잠깐의 스몰톡을 한다.

잠들기 전 나란히 누워 오늘 크게 마음 쓴 일이 없는지 물어보며 내일의 아침을 기약한다.

아이를 제외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살펴주려 애쓰는 것.(그래도 아이얘기를 많이 한다 :))


때로는 의무처럼 매일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이 되돌아올 때는 슬프기도 하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무슨 일 있었어? 뭐 힘들거나 좋거나 특별한 건?"

"똑같이 오전에 회의하고, 누가 이상하고. 점심은 뭐 먹었고. 별다른 건 없고. 당신은?"

"틈틈이 집안일하며 아이보다 밥 차려 먹고 응가 치우고 놀고 먹이고 재우고. 재밌다 졸리다 힘들다 했어."



욕심일까 싶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우리는 매일 비슷한 대화를 한다.

노력이 필요한 일,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하는 일, 그래야만 지킬 수 있는 일

사랑 그 이상의 사랑으로 상대를 살피는 일.

이렇듯 우리가 부부로 살아가는 데는 출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의지와 애정이 필요하다.


개인 vs개인으로 만난 부부 사이에서도 상대의 싫은 모습에 지치고 싸우는데 바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기 전에는 싸울 틈도 없는 부모 시간에는 앙금이 남지 않도록 새벽 시간을 활용한다.

귀중한 취침 시간을 쪼개어 서로를 마주하고 차분히 대화를 나눈다.

이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엄마 아빠로서 싫은 모습도 인정하고 다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부부가 부모가 되면서 생긴 작은 변화이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기에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위한 가장 최선의 행복을 좇고

그 모든 행복의 감정만을 최선을 다해 자식에게 주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이렇게 애써도 삶이란 모름지기 희로애락이 같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을 탄탄한 토양이자 방파제로 삼아

아이가 제 삶에서 부딪힐 그 모든 희로애락을 잘 견뎌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포기하지 않고, 처음과 똑같이 설레진 않더라도 따뜻하고 굳건하게.

소중한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사랑으로 가득할 수 있도록.

너의 이름을, 너의 존재를, 너의 노고를, 너의 청춘을 잊지 않으며

오늘도 우리는 부모와 부부사이에서 매일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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