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2-23주 차] 엄마가 배신해야만 성장하는 아이러니
아기가 옹알이를 익숙하게 할 무렵부터 울 때마다 '엄-마아-'하고 울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며 '엄-', 입술을 떼면서 '마아-' 하는 말이었는데, 명확하게 '엄마'의 발음으로 들렸다.
그저 착각이나 우연이겠지 생각했다. 흔히들 말하는 '내 자식은 천재인가'를 하기 싫어서.
하지만 울 때마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 울음을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듣자 저마다 내게 한 마디씩 했다.
"울 때마다 엄마를 찾네", "네가 엄마인 걸 아나보다", "아기는 엄마가 최고지." 등등
실제로 우리 아기는 졸릴 때와 배고플 때만 칭얼대는 편이었고, 항상 재우고 밥 먹이는 건 엄마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나를 찾을 수 있겠단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정말 날 엄마로 인지하여 부르는 걸까.
아직은 우연 같았다. 물론 기분 좋은 우연.
그럼에도 아빠만큼 억울한 건, 먹고 잘 때만 엄마를 찾는 기분.
퇴근한 아빠를 보면 그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어주는 아기의 웃음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부럽다.
아빠는 아기와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적지만 그만큼 질 높은 애착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항상 목욕도 시켜주고 몸으로 잘 놀아주고.
아들이어서인지 그런 아빠를 정말 좋아한다.
엄마는 빙그레- 웃는 정도라면, 아빠에겐 방실방실 방긋방긋 함박웃음을 마구마구 날리니.
아기와 잘 맞는 케미는 부모마다 다른 것이니, 아빠와도 잘 지내는 아기가 기특할 따름이다.
나의 역할은 지금 이쯤이라 생각하며 성심성의껏 아기를 돌보는데 만족하고,
최대한 아기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울리기보단 웃기고 평안을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애씀이 끝나는 때가 왔다.
아기가 첫 뒤집기를 준비하는 때. 처음으로 부모의 한계를 깨달았다.
아기의 발전을 위해서 어쩌면 부모는 아기의 인생에서 개입하고 싶은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는 걸.
뒤집기와 되집기를 가르칠 때 보통 터미타임 자세에서 시작한다.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게 하여 두는 것.
이 터미타임 자세에서 한계에 도달하거나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땀을 잔뜩 흘리며 칭얼댄다.
당장이라도 아기의 평안을 위해, 뒤집어주고 안아줄 수 있지만 나는 그저 지켜보며 괜찮다 말해준다.
혹시나 아기의 어깨나 팔 그리고 자세에 문제가 있을지만 유심히 관찰하면서 아기의 고난을 지켜본다.
이맘때쯤 조부모님은 아기에게 터미타임을 시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어 대신 뒤집어주길 반복했다.
바로 누우면 뭐 하나, 아기는 금방이고 뒤집으려고 애쓰는데.
그렇다고 다시 터미타임 자세를 해주면 또 힘들다고 칭얼댄다. 결국은 안아주고 만다.
그때마다 나는 조부모님을 제지하다 그냥 한동안 부르지 않았다. 아기가 스스로 뒤집기 전까진.
아기가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아 불편을 토로한다 해서 우리가 뒤집어준다면,
아기가 스스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뺏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기의 성장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사람이지 대신하는 사람은 아니다.
평생을 항상 아기의 옆에 바싹 서서 모든 선택을 함께 혹은 대신해줄 수 없다.
아기가 온전히 자신에게 이로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 등 독립적인 주체성을 길러줄 뿐.
그 이상은 우리의 몫이 되어서도,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 쓴 것처럼, 아기는 제 삶에서 전능함을 느끼고 이는 전부 부모가 채워준다.
배고플 때 응애 한 번이면, 밥을 입에 넣어주고.
졸릴 때 칭얼 한 번이면, 편안히 안아 알아서 재워주고.
대소변을 알아서 치워주고, 알아서 기쁨조로 웃겨주며,
알아서 여기저기 신기한 곳을 안아 데리고 다니니. 이보다 더 만능일 순 없다.
아기에 전능함을 채워 주는 것이 부모라고 하지만
아기 발달을 위해서는 그 그 전지전능한 효능감을 배신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도 하다.
배신당함에 괴로워하며 작은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입장.
그것이 뒤집기의 시작이다.
그렇게 아기는 뒤집기와 되집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단계로 성장했다.
이제는 앞으로 기어가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낑낑대면서 엉덩이를 들었다 내리길 반복한다.
팔다리가 교차하면서 코어 힘을 이용해서 앞으로 전진하는 이 단순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는 터미타임 자세에서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짜증이 오른 아기는 '엄- 마아-'라고 외치며 날 찾는다.
땀범벅에 침 흘리고 짜증 내며 날 찾는 아기를 조금씩 쉬게 해 주면서 다시 괜찮아지면 눕혔다 세우길 반복한다. 그리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며 아기의 다음 발달을 응원할 뿐이다.
아기 스스로의 힘과 요령을 길러, 제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러다 어느새 걷고 뛰어 내 품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제 삶을 평안히 누리길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