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37-60주 차] 엄마로서 바라는 온전한 행복이란
<나 혼자 산다>에서 트와이스 지효가 자신의 화분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이파리 하나하나 닦고 영양제로 살뜰히 챙기고. 몬스테라와 금전수 등 여러 화분을 길렀다.
하지만 지금 나의 화분은 베란다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죽어가고 있다.
문득 이 화분이 나 같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의 삶과 집중력은 당장 눈앞에 죽어가는 화분처럼, 이 화분에 물 줄 여력도 없을 정도로 여유의 틈이 없었다. 오롯이 나 혼자 살 때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던 신혼부부 시절의 여유는 사라졌다. 아끼던 내 화분에 물 줄 틈도 없을 정도로.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되돌아봤다. 나를 닮은 이 화분이 이렇게 방치된 계기.
처음엔 그냥 죽이자 싶었다. 예전처럼 알뜰살뜰 살피지 못할 거라면 기왕 이렇게 된 거 화분을 죽인 후 새로 심으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물을 주지 않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문득 베란다 창을 너머 보면, 우리 화분들은 메말라가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기에 여자로서 미스가 아닌 아줌마로서의 변화된 삶을 그저 삼키듯 받아들였다. 그 외에도 아내, 며느리, 딸 등 나의 다른 역할은 한편에 미뤄두고 엄마의 역할에 집중했다. 아이를 책임지고 잘 키워야 한다는 비장함에 갇혀서 아이는 살뜰히 돌보면서 정작 나 자신은 저 화분처럼 무심하게 물 한 모금 제 때 주지 않고 메마르게 두었다.
가족이 화목하면 아이도 즐겁고 엄마가 행복하면 자연히 아이도 행복할 텐데, 자꾸만 지치고 힘들고 아팠다.
내 몸과 마음, 영혼이 저 화분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살려보기로.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단순히 기록이었다. 생애 첫 경험.
지금 아니면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하루들.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보며 변화하는 나 자신을 기록하고자 했다. 신생아기와 100일, 뒤집기와 첫 돌. 걷고 말하는 놀라운 그 모든 순간들.
마음도 글과 똑같아서 쓰면 쓸수록 다듬어지고 명료해진다. 아이를 기르며 막연히 괴롭고 지친 때, 왜 내 마음은 그랬는지를 브런치를 쓰면서 이해하기도 했다. 때로는 마음을 정리한 글을 풀어내면서 스스로 오늘 하루의 안녕과 위로를 보내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도 이 글을 읽고 안녕과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기록 그 이상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주차별 시간순으로 글을 쓰면서,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상황 속 엄마의 마음에 초점을 맞췄다. 신생아 시기는 하루하루 쑥쑥 크기 때문에, 주차 별 겪는 혼란과 괴로움, 혼돈 속 행복과 기쁨도 변화무쌍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엄마는 행복하면서도 힘들었다.
사실 언제나 엄마는 힘들었다. 사람마다 성격에 따라 내색하지 않거나 한탄하거나 자책하거나 포기하거나 여러 가지 모습이 있지만, 힘듦을 느끼지 않는 엄마는 없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힘든 일이 왜 이것뿐이겠는가. 하지만 임신-출산-육아 그 모든 생의 이벤트는 아빠보단 상대적으로 '엄마의 고통'인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몸이 축날 뿐만 아니라 육아를 하면서 회복하기도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물리적으로 몸이 고통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괴로움이 더 힘들다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 소중한 시간에 힘듦에 갇힐까.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품은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이 모든 과정은 평생 단 한 번이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며, 즐기며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도 모자랄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따금씩 지치고 우울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쓴다. (육퇴 후 홀로 술 한 잔을 마시거나,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벽 드라이브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등등)
엄마가 느끼는 괴로움의 본질을 다루고 싶었다. 처한 상황과 조건이 다르더라도,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라서 느끼는 마음은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내 아이와 내 인생, 내 가족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제 나름대로 노력하는 마음. 애정과 사랑이 담긴 최선으로 가득한 '엄마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럼 엄마의 가장 원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어쨌든 아이는 큰다. 지금 당장 허둥지둥 대고 몰라서 두렵고 미안한 하루도 금세 지나간다.
수유하면서는 트림을 시키는 것도 통잠을 재우는 것도. 제 때 뒤집기와 걷기, 엄마와 아빠를 말하게 하는 것도.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롭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이에 따라 부모가 겪는 시련 역시 흘러간다.
내 아이는 첫 돌이 지났다. 그래서 육아 서적에 <신생아기 분유 먹이는 법>이 보이면 그 챕터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휘릭 넘겨버릴 수 있다. 이미 겪고 나니 빤히 알 수밖에 없기에 내게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니게 된다.
그래도 내 글은 언제 읽어도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싶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브런치에 로그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담아야 할 지 고민하면서.
임신-출산-육아의 과정 속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행복과 고통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이는 평생 느낄 희로애락의 감정을 매번 최대치로 갱신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아이 기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고 혼란스러운 걸까. 이 순간의 '무엇'을 담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까”
엄마의 마음을 다룬 책과 이야기는 많다. 아이를 둔 가정의 에피소드는 이집저집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통한 위안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먼저 느껴질 때도 있다. 부모와 아이의 성격, 양육의 환경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에피소드 안에서 각 가정의 선택은 그 과정과 결과가 제각기 다르다. 이는 파편적인 공감만 불러일으키거나, 때로는 납득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오해나 편견, 지루함, 싫음 등의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미 있는 이야기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굳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아이가 온전한 행복을 갖길 바라는 마음.
아이를 기르면서 지치고 힘든 순간, 왜 힘든지는 명확하지 않아 모를 때. 그 혼란한 마음을 글로 풀어가며 내면을 되돌아보고 이를 긍정의 힘으로 삼아 내 생활에 다시 힘이 되길 원했다.
이제는 모른다고 말하는 게 바보 같은 정보화 사회. 모른다면 검색해 보면 된다. 육아를 하면서 궁금한 점은 유튜브와 구글링, 네이버가 전부 알려준다. 맘카페에는 경험 많은 둘째 셋째 엄마들이 조언도 해주고, 소아전문의들이 저마다 문제의 해결책을 건넨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예전보다 아이를 기르기엔 더욱 더 편해졌다는데, 왜 엄마는 언제나 힘들고 불안하고 지칠지를 이 브런치북을 통해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엄마 마음용 검색창을 만들고 싶었다. 자잘한 감정과 핑계를 지우고 괜스레 비장해진 엄마의 마음속 거품을 걷어내면, 사실은 아이에게 온전한 행복을 주고 싶은 엄마의 책임감과 사랑이 여러 색깔의 모양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걸 대신 글로 정리해주고 싶었다. 혼란한 엄마의 마음에 괜찮아질 거란 위로와 오늘의 안녕을 건네며,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하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방법도 함께 고민하면서 말이다.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슈퍼맘을 꿈꾸었으나 엄마에게는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대신에 엄마의 어깨 위에 빨간 망토를 질끈 묶어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도록. 육아의 에피소드를 통해 진솔한 엄마의 마음을 풀어내고 긍정과 힘이 되는 문장으로 어떤 행복을 온전히 바라느라 이리 힘을 썼는지 쓰고 싶었다. 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제 나의 삶에서 내 아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다른 엄마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엄마로 살아갈 것인가. 보호자로 책임져야 할 인생을 살면서도 엄마 역시 행복해져야 한다.
비록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된 육아일지라도, 오늘의 소중함과 아이가 주는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오늘의 행복에 듬뿍 취해야 한다.
그렇게 메말라간 내 마음의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 시간과 돈을 들여 가장 내 맘에 드는 예쁜 물조리개를 사서 물을 주면서 말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여유는 둘 수 있는, 단련할 수 있는 엄마로 성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내 화분은 남은 평생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내 아이가 20대 30대가 될 때까지도 행복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30에 시작해서 60에 끝나는 시리즈 책이 될 수도 있겠다.
1)임신과 출산 2)신생아기-돌 3) 1-3세 4)4-7세 5)8-10세 6)11-13세 7)14-16세 8) 17-19세 9)20대 10)30대
생애주기 별 주제도 갈수록 다양해질 테니 그만큼 내 마음의 정원도 각양각색 화분과 꽃으로 다채롭고 아름답게 구성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엄마들에게도 구석에 밀어둔 화분을 발견하고 찾아내 물을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비로소 우리는 엄마가 되어 간다. 자신과 아이, 가족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