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은 아니시네요?

정신과 시간의 방의 역습

by 명랑한자몽


20대 중반의 여자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다.

머리를 만져주며 앞에 앉은 오늘의 이 고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묻는다.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26이에요."

"어머 진짜요? 저는 당연히 저보다 어리신 줄 알았는데 언니시네요?"


20대 중반의 그 여자는 기분이 좋아진다.



서른이 가까워진 그 여자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다.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묻는다.


"주말인데 머리 하고는 이제 뭐하세요?"

"신랑이랑 같이 잠깐 근교에나 나갈까 해요."

"어머, 결혼하셨어요? 어려 보이시는데.. 결혼을 일찍 하셨나 보구나."


서른이 가까워졌지만

그 여자는 또 기분이 좋아진다.



30대 초반이 된 그 여자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다.


"염색을 오래 안 하셨나 봐요."

"그쵸, 거의 막 투톤 될라고 하죠. 아가 낳고 처음이니까 진짜 1년도 더 되었겠네요."

"어머, 아가가 있으세요? 어려 보이시는데..

동안이시네요!"



어느덧 30대 초반이라고 말하기는 양심이 없고,

30대 중반이라고 말하기는 싫은 나이가 된 그 여자가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3시까지 다 될까요?"

"아, 될 것 같아요. 3시까지 어디 가셔야 되나 봐요?"

"아가들 하원 시간이라서요."

"아 그러시구나. 그때까지 될 것 같으니 걱정 안 하셔요 돼요."


응?

그게 끝이야?

'어머! 아가들이 있으세요? 어려 보이시는데.. '

이건 안 하는 거야?

약간 소극적인 선생님이신가 보네. 그런 말씀은 쑥스러워서 잘 못하는 스타일이신가봐.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후 미용실에서도, 그리고 또 얼마 전 미용실에서도,

더 이상 어떤 헤어스타일리스트도 그 여자에게

그녀가 원하는 '동안'이라는 비현실의 명사가 아닌

"기다리시는'동안' 뭐 좀 드릴까요?" 하는 현실의 부사어만 친절하게 들려줄 뿐이었다.


그렇게 육아라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혀 지내온 그 여자는


그제서야,

아..

하고 차가운 탄식을 내뱉는다.


그녀가 거울을 본다.


수면부족, PMS 등의 꽤나 과학적이라 생각했던 이유가 퍽이나 현실도피적 핑계였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그렇게 늙어간다.


그래, 본래도 빈티지를 좋아하니 뭐 이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게 그녀는 백화점으로 가 태어나 처음으로

매일 밤 리셋이 시작된다는, 차원이 다르다는

갈색의 화장품을 기꺼이 산다.


자신에게 정직한. 그녀는

빈티지를 진짜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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