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내 손에 올려주고 가던 딸기맛 새콤달콤 하나에 가슴이 터질 것 같던 때가 있었다.
쑥스러운 듯 내 책상에 두고 간 그의 쪽지 하나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던 때가 있었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마음 전체가 쿵 떨궈지기도 했던,
우린 그런 때를 지나왔다.
하지만 마음의 비용은 물가상승률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이제 딸기맛 새콤달콤 한 줄, 아니 한 번들이라도 그게 될까.
너무 올라버렸다. 마음의 비용.
대부분의 시장경제가 그러하듯 한 번 올라버린 비용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간다면, 그건 무언가 끝이 보인다는 거겠지.
우리 부부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더랬다.
로마에서 사 먹는 젤라또가 정말 맛있고 설렜지만 비싸니까 하루에 꼭 하나만 사 먹자고 약속했었다. 그때 당시의 유로로 따지면 배스킨라빈스보다 아주 조금 더 비싼 수준이었던 것 같다.
같은 이유로 근사한 레스토랑은 고사하고 거의 일정 내내 마르게리따 피자와 노점 샌드위치만 먹었더랬다.
아무 길거리에 털썩 앉아 먹던 루꼴라 달랑 하나에 소스라곤 티스푼 하나나 넣었을까 하는 맛없는 샌드위치에 행복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들어가는 그 귀한(?) 브랜드의 매장들을 하나도 들리지 않았던 아니 들려야겠단 생각도 못했던 참 순수했던 행보의 샹젤리제 거리, 회색 후드티를 입은 우리 부부에게 청소년 입장 요금을 받던 에펠탑.
걷고 또 걸어 밤이 되면 신혼의 불타는 밤은커녕 기절하듯 쓰러져 잤던 우리의 밤,
신혼여행이라 하지만 실상은 배낭여행일듯한 시간이었지만 우린 아직도 그때를 행복하게 기억한다.
지금 내가 다시 그곳에 간다면 나는 어떠할까.
과연 그곳의 냄새가 그곳의 빛깔이, 백(bag) 하나를 이겨낼 수 있을까.
낭만이 이성과 금전에 철저하게 패배하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금전이 따라주어야 하는 나는 그런 으른이 되었다.
매일매일 나의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가 않는다.
뭐가 저리도 재미있을까 들여다보면
그저 바구니에서 또르르 굴러 떨어진 오늘 공원에서 주워온 솔방울 때문이고,
맥락은 다 무시하고 이상하게 바꿔 부르는 노래 가사 때문이며,
웃다가 뽕 튀어나와 버린 방귀소리 때문이다.
자기들 방 한쪽 구석에 빛깔 별로 차곡차곡 모아둔 낙엽들과,
어젯밤 나를 겨우겨우 설득하여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름 모를 가을의 열매들.
‘아니 이걸 벌레 생기면 어쩌려고 이렇게 모아둬.. 에휴 참.’하다가도 풋 웃음이 난다.
저들의 행복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하나도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나의 잎사귀 안에 수많은 주황과 빨강, 노랑 그 어스름의 빛깔을 가득 채워내는 이 서늘하고도 따스한 계절에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의 비용을 이 아름다움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써냈을까.
언제부터 나는 가만히 들어보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에 이토록 무뚝뚝해졌을까.
작년부터 느껴진 크리스마스에 대해 다소 닝닝했던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겠다.
아무리 이곳저곳에 가입하는 아이디에 ‘소녀’를 잊지 않고 넣는다 하여도, 낡아가는 것은 몸땡이 뿐 아니라 마음이라, 정작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이 이토록 비싸진 여자에게
아무래도 소녀는 무리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