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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Oct 21. 2019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 아이팟을 사주었던 남자_2


어릴 적부터 화장실을 매우 가리던 예민한 여자는

이 남자와 화장실을 공유하고 살아야 한다니

결혼은 참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장 운동이 활발했던 남자는

이 여자와 상관없이 여전히도 하루에 2번은 상쾌함을 맛보았고

꽃을 따러간다며 아주 웅장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라는 여자가 이해가 영 안 되었지만 귀여웠다.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저녁 어스름과 늦은 밤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어서 

결혼이 좋았다.


남자는 조금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던(어떤 질량이나 부피가 그러하다는 표현이 아님을 알립니다) 그 여자가 

소위 말하는 완전한 어장 속 내 여자가 되었으니

결혼이 좋았다.



여자는 까붐과 흥에 있어

자신의 가용범위 최대치까지 모두 보여줘도 된다는 안정감에

결혼이 좋았다.


남자는 만난 지 100일째에 선물했던 아이팟 뒷면의 신분이 

실현되었다는 생각에

결혼이 좋았다. 



결혼이 좋고

서로가 좋던 두 남녀는

퇴근 후 만나는 시간이 좋았고,

함께 수다를 떨며 먹는 야식이 좋았다.


쌓여가는 시간만큼 살도 그렇게 쌓여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로가 예뻤고,

여전히 웅장한 음악과 함께 꽃을 따야 했지만

그래도 결혼은 참 좋은 것이라고 둘은 생각했다.



두 남녀는 커플을 지나 어엿한 부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쌓여 부부는 부모가 되었다. 

그들은 두 아이를 매우 사랑했지만

그만큼이나 두 아이가 모두 잠든 육퇴 후의 꿀 같은 시간을 매우 사랑했다.


볼륨의 최대 허용치가 매우 낮다고 하여도

함께 보는 예능이 드라마가 영화가 즐거웠고,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하는 그들이 없는

이 오롯한 야식의 시간은

남녀 그 둘일 때보다 더 산해진미인 것도 같았다.


불타는 밤은 없어도

그들에겐 여전히 주전부리와 미드로 채울 수 있는 불금이 있었고,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것 같던 그 설렘은 없어도

시답잖은 농담과 말도 안 되는 춤을 함께 하며 깔깔거릴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음악을 듣던 둘만의 오붓한 시간은 없어도

말도 안 되게 정말 믿을 수 없게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존재들을 보며

같은 마음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그들은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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