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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Nov 07. 2019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연년생 육아에 대하여

                                         

나는 연년생 엄마다.


첫째는 어느덧 43개월에 접어들었고,

둘째는 30개월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완전한 13개월 차이의 연년생.


첫째 조리원 때 조리원 실장님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며

조리원에 있다가 돌잔치하러 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 꼭 있다고 말씀하셨더랬는데


사실 귓등으로 들었었다.


그런데

나는 연년생 엄마다. 흠.




그냥

시간이 더 지나 저들이 더 이상 '아기'가 아니게 되어버리면

연년생 육아도 더 이상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게 될 것 같아서

나의 전쟁 같던 지난 천 일 가까운 장정을

조금씩 기록해 보는 건 어떨까 해본다.


                                                            

part 1. 쑥스러움과 부끄러움 그 사이 어디 즈음 (임신 초기)

이상하게 끌리던 그 음식과 쌔한 기분과 함께 맞이하게 된 그 시작.

괜스레 어디 가서 다시 또다시 이렇게 임산부가 되어버렸노라고 말하기가

한동안은 참 쑥스러웠더랬다.

막막 그. 막 그렇잖아요? 허허 참.

꼭 그런 건 아닌데 (뭘?)

아무튼 그러한 뭔가 쑥스러움과 부끄러움

그 사이 언저리의 감정으로

임신 초기를 지나왔더랬다.


                                                        

part 2. 있는 듯 없는 듯 그렇지만 그녀는 있었다 (임신 중기, 후기)

아마 이건 경산부(위에 자녀가 있는 임산부)의 경우는 대부분 공감하는 이야기 일 것 같다.

진짜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하루가 간다.

첫째 임신 때는 참 태담이니 태동이니 아기용품이니

정말 세상의 모든 중심이 뱃속 그 아가였는데,

둘째 임신 때는 중심을 쭉 이어오던  그 아가가 여전히 중심이다.

(미안하다 2호여. 이거슨 숙명 같은 거란다;)


특히 나는 임신기 내내 첫째가 매우 매우 심한 아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것은 마치 레벨1에 막 입문했는데

기본기를 익히기도 전에 레벨3을 하라는 것 같았다.

점점 불룩해지는 배만큼

1호 아가의 몸무게도 무거워져 갔고,

스스로 움직임이 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안아라 이리 데려가라 올려라 눕히지 마라 등의

수많은 요구사항까지 접수해드리느라

매일 땀이 뻘뻘 났다. (그런데도 살은 전혀 빠지지 않았다는 점점점점. )


                                                            

part 3. 독과점의 끝 (디데이 무렵)                                     

드디어 궁금하던 뱃속 아이를 만난다고 설렜던 그때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나를 독점하던 그 아이가 더 이상 나를 독점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마음 아팠고,

독점의 기간을 풍요롭게 주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했다.

또 내가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를 동안 내가 없는 그 아이는 어떨까. 등등

정말 수많은 무거운 감정들이 나를 억눌렀다.

 2번아, 진짜 미안.

아까도 말했지만 이거슨 숙명 같은 거라니까?

다 그런 거란다. 진짜야.


                                                           

part 4.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연년생 육아 시작~ 첫 한 달)                                       

정말 다시 하라면 못 할.

지금도 아직까지도 그때 그랬지.. 라며

아름답게 추억하지는 못할(심했나)

전쟁 그 자체였다.

동생과 엄마가 함께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첫째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거라는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첩보영화처럼 2호에게 들어가 수유를 하고, 재우 고를 반복했더랬다.


아마 우리 엄마가 없었다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을 그러한 시간이었다.

거의 나는 1호에게 붙어있었고, 엄마가 2호를 마크했더랬다.


이래서 차라리 쌍둥이가 편하다고 하는구나.

차라리 둘 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편할 것 같았다.

차라리 둘 다 누워있는 아가들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둘 다 울고 말 못 알아듣고 말 못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미묘한 차이로 더 알고, 더 느끼고, 요구사항이 있는

서로 다른 제형의 음식을 먹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너무너무 너무 힘들었다.



신랑이 퇴근하고 나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정도였다.

정말 어른이 세 명은 있어야 사람이 사는 것 같았던 그 시간. 휴.


그 시간이 다 지났다니 정말 새삼 감사하다.                                                             



part 5. 헤라클레스 기                           


이 시기의 생활을 저 사진 한 장으로 말할 수 있다.

매일이 저랬다. 정말 그랬다.

1호는 2호의 존재가 불편했고,

2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하루 일과가

먹고
싸고
때리고
진실의 방에 소환되고
화해하고
밀치고
소환되고




정말 지겨운 하루의 굴레였다.

질투가 나서 그렇다고 1호를 더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말씀들 하셨다.

난 이보다 어떻게 더 1호를 사랑해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이 사랑해준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아무리 해도 그녀에겐 아마 부족했나 보다.


진짜 매일매일이

오은영 선생님 찾아뵙고 싶었던 날들.


아직 걷지 못하는 2호를 엄마가 자꾸 안아야만 하는 게 불편했던 1호 때문에

둘 다 안고 다니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내 생의 헤라클레스기. (그래서 내 팔이 이런가; 에이씨)


                                                           

part 6. 오백일의 썸머                             

내 생애 가장 긴 여름을 지났다.


더워서 인지 더 싸우고 더 때려서 나도 더 짜증 나고 더 땀나서

난 내 안의 악마를 수도 없이 보았다.


아 내가 이렇게 사랑이 없는 엄마였나.

난 좋은 엄마가 아니야.

라는 수많은 자책으로 채워갔던 시간들.


진짜 암흑기였다.

나 김해나는 전혀 없었던 시간.

오로지. 오롯이. 온온이 엄마만 존재하던 시간이었다.

지난 500여 일까지는 정말 긴 여름이었다.


                                                      

part 7. 드디어 찾아온 (조금은) 내게 강 같은 평화                                        

육아가 시작되고 어쩌면 가장 황금기이다.

한창 헤라클레스기 일 때, 오백일의 썸머를 지날 때 즈음엔

너무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스타에서 만난 연년생 엄마에게 문의를 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신기한 존재이다.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신세한탄을 곁들인 문의를 하게 되다니. 내 평생 가지고 살아온 성향 따위도 다 이겨내는 엄마라는 무게감)


그분의 이야기로는 둘째가 18개월쯤 되면 살만하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 답변이 청천벽력 같았다.

아직 돌도 안 된 둘째가 18개월이나 되어야 살만해진다고? 오 마이...............

그런데 정말 그 말이 맞았나 보다.

역시 유경험자 선배님 말씀이 최고다.


물론 요즘도 여전히

먹고

싸고

때리고

소환되고

화해하고는 맞지만,

그 중간에 (같이 놀고) 파트가 생겨났다.

아 그리고 (싸고) 파트에도 좀 변화가 생겼고 말이다.


꽁냥꽁냥 둘이 놀고 있으면 정말 사랑스럽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다니

난 정말 행복해!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걸 보니

이것이 황금기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아마 지금부터 약 1년간은 또 조금씩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

2호가 1호만큼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릴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대된다.

 그 변화가.

이 둘의 관계가.

이 둘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이.

이 둘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삶이.


육아는 성장이다.

너도 나도 함께 자라나는


육아는 성장이다.

내일도 자라나자.


쑥쑥쑥 자라나

오늘을 감사하며 회상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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