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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Jan 21. 2021

서른여섯 살의 장래희망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네, 저는요.

바깥이 캄캄해지기 전에 우리 친구들을 하원 시켜서 집에 데리고 오고 싶어요.

안될 걸 알면서도 혹시 당신이 하원 시켜줄 수 없냐고 맘 졸이며 남편에게 연락할 일도 없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우리 친구들이 들려주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조잘거림을 행복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듣고 싶어요.

혹시나 친구들이 갑자기 아픈 날엔 병원에 함께 갔다가 집에서 하루를 푹 쉴 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에 허덕이는 게 아니라 함께 우리 각자의 발전을 위한 즐거운 경험을 하면 좋겠고요.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고 사랑이 없는 사람이냐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고,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남편에게 애는 나 혼자 키우냐고 욱하며 섭섭하게 되지도 않았으면 해요.

또 쌓여가는 냉장고 안의 식자재를 죄책감에 휩싸여 대거 정리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

2시면 아파오는 목과 어깨를 붙들고 어쩌지 못해 안달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더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하며 나를 가꾸게 되면 좋겠어요.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다고 나를 비판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고,

내 앞에 펼쳐진 수많은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 친구들에게 맘껏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10년을 변함없이 예뻐해 주고, 바쁜 회사로 인해 늘 미안해하는 신랑에게 ‘괜찮아. 사랑해.’하고 쿨하고도 따뜻하게 말할 수 있는 아내이면 좋겠어요.

조잘조잘 우리 엄마와 요즘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가득 수다를 떨 수 있으면 좋겠고,

나의 존재가 너무 필요한, 사실은 인생에서 너무나도 짧을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충분히 안아주고 뽀뽀해주며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이면 정말 정말 좋겠어요.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서른여섯의 내가 가지고 있는 장래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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