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져 가는 내가 참 좋아하는 핑크 하늘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맘 졸이며 달려가던 꽉 막힌 퇴근길도
당분간은 안녕이다.
지난 목요일엔 당직 때문에 오래간만에 출근을 하는 바람에 나의 친구들도 정말 간만에 출근을 했더랬다.
조금 더 자고 싶다는 2번의 징징거림도 여전했고,
'얼른 와서 앉아, 머리 어떻게 묶을까? 얼른 부지런히 오라니까! 엄마 늦었어.' 대사도 여전했다.
안방과 친구들 방을 스무 번쯤은 오가야 대문을 나설 수 있는 분주한 아침이었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또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뒤로 막히는 퇴근길을 달렸더랬다.
또 친구들이 세 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만
마음은 달랐다.
그리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결정 같아.'
오늘은 어쩐지 진짜 밥도 하기 싫고,
부실했던 점심 탓인지, 무리하게 최선을 다한(?) 업무 탓인지 탄수화물 수혈이 필요했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지역의 몇 안 되는 특산품? 인 그 빵집에 들렀다.
마치 대단한 혜택을 제공하는 마냥
"오늘은 집에 도착해서 손만 씻고, 빵 먼저 와구와구 먹은 다음에 목욕할까?'"라고 건넸고,
나의 친구들은 이 교묘한 어미의 술수에 아멘으로 화답할만한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컴컴해진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열고 공기청정기 전원을 켰다.
가방은 마구마구 벗어던졌고, 얼른 손 씻고 모이자!! 한마디를 던졌다.
겉옷만 대충 걸어두고 손의 청결만을 챙긴 우리 셋은
탁자를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의 기호에 맞는 빵을 골라 각자의 접시에 담았고, 각자의 마실 것과 함께
탄수화물의 위대함을 만끽했다.
이미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습한 사실이나, 여전히 탄수화물은 참 대단했다.
기분이 좋았다.
오물오물 계속 리필을 구하는 너희의 입을 가만히 보았다.
결국 행복하다는 생각으로까지 날아갔다.
먹고 나서 바로 씻으면 안 되지라는 의학적 핑계를 근거로 우린 친구들의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오늘은 어떤 친구와 가장 많이 이야기했어?"
늘 비슷한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그들이 보내오는 답변은 대부분의 날에 참으로 다채로워
난 오늘도 이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대 친구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이 수다가 참 좋다.
어느덧 시사 경제를 제외하곤(이건 어차피 엄마도 잘 몰라ㅋㅋ) 어른의 대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이들과의 대화가 새삼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 오늘은 밥도 안 하고,
아직 목욕이란 과제가 남았지만,
우린 모두 내일도 쉬니까.
1층 2번 친구의 침대에 모여 누워서 다리를 올리고 실컷 비행기도 태우고,
옆구리를 찔러 간지러워 깔깔깔 웃는 너의 얼굴을 보며 나도 참 그렇게 간지러워졌다.
그저 의식에 흐름에만 의존한 수다와 놀이로 이어나가다 보니
이제는 씻어야겠어. 어느덧 8시 반이 넘었으니까. 참 오래도 놀았네, 씻지도 않고.
물론 반드시 이렇다 할 순 없겠지만,
느긋할수록 마음은 너그러워진다.
천천히 볼 수록 더 깊이 볼 수 있다.
어쩌면 잠시 미루 어두는 것이 생각도 못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오늘이 그랬다.
잘 먹지도 않는 아이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골고루 먹어,
부지런히 먹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얼른 먹어,
얼른 먹고 맛있는 초콜릿 하나 먹어야지,
결국 엄마가 이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엄마 이야기 들어줄 거야? 와 같은
협박과 협상, 타협과 결렬, 회유와 유인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기껏해야 2할 정도 될 법한 반복된 신경전을
가끔은 내일로 미루어도 될 법 싶다.
천천히 가는 게 어려운 성격의 엄마와 지내느라
너희들이 고생이 많지.
알지만 참 엄마도 그게 마음대로 안되네.
그래서 그냥 그걸 더 해보고 싶어서 엄마는 이렇게 결정을 했어.
천천히 가보자.
너희들이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의 행방은 여전한지,
요즘 부쩍 공룡에 관심이 많은 네가 말한 공룡 abc에 나오는 모든 공룡들의 생김새가 어떤지,
오늘 네가 예담이에 대해 왜 그렇게 느끼게 되었는지,
들여다보고
함께 누우며
가득 수다로 채워가는
그런 시간을
우리 조금은 더 가져보기로 하자.
그러는 게,
엄마도 조금은 더 행복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