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의 명랑한 여자는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 ‘남편’이라는 각인과 함께 아이팟을 선물했던 ISTJ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매일 저녁을 수다로 야식으로 채워내는 천고마비의 신혼을 지나 보내고
2년이 채 못 되었을 쯤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들에겐 훈순이라는 존재가 찾아왔다.
개똥이처럼 촌스러운 이름에 담긴 옛 으르신들스러운 염원도 조금, 훈훈하고 순한 아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요즘의 줄임말도 조금, 그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태명이 탄생했달까.
훈순이가 흑백사진 속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처음 찾아왔을 때, 엔프피는
생각보다 온 우주가 나에게 오는 감동, 사실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그저 신기하고 조금은 두려우며, 설레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한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엄지손톱만 한 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느덧 현재의 대화를 장악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의 내일, 다음 계절, 내년, 그들의 미래에는 온통 그 아이가 함께였다.
얼굴도 모습도 알 수 없는 아직 그저 엄지손톱만 한 존재와 늘 함께 걸었고, 여행했으며, 그렇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안정기라고 하는 11주가 되었을 때 또 병원을 찾았다.
배 위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차가운 기계의 촉감과 자꾸만 모니터를 오가던 선생님의 눈빛 속에 엔프피의 꽤나 정확한 촉은 어느 정도 직감을 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만으로도 그들에게 숱한 미래를 꿈꾸게 했던 그 아이는 그렇게 심장이 멈췄다.
분명 우주 정도는 아니었던 그저 엄지손톱만 했던 존재는 몇 날 동안이나 엔프피의 울음 촉매제가 되었다.
잇티제와 함께 하는 천고마비의 시간으로도 참 행복하다고 느꼈던 엔프피지만 다시 그 엄지손톱 크기의 존재를 만나고 싶다고, 아니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궁금했다. 알아내야 했다.
다시 그 엄지 우주의 존재를 소환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든 걸 알 것만 같은 초록창이 전해준 엄지 우주를 소환해낼 방법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중 엔프피는 다소 과학적이고 통계에 기반한 방법 두 가지와 꽤나 토테미즘적이고 기괴한 방법 한 가지를 골라냈다.
하나, 엽산과 필요한 비타민을 규칙적으로 챙겨 먹어 엄지 우주가 마음껏 수영하고 쑥쑥 자라날 수 있는 아늑하고 튼튼한 집을 준비해둔다.
둘, 배란테스트기와 어플을 사용하여 순간의 불꽃에 의존하지 않고 수치화된 날짜에 근거하여 엄지를 소환하도록 한다.
셋, 의식이 치러진 직후 물구나무 자세로 짧게는 수 초 정도를 버텨낸다.
엔프피는 모든 방법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특히 마지막 방법은 참으로 회의감이 들고 수치스러웠으며 종종 앞으로 고꾸라져 코끝이 시큰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모든 건 엄지 우주를 만나기 위해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으니까.
몇 개월 후 잇티제의 엄마는 엔프피를 불러, 아주 크고 또렷한 빛깔의 빨강 노랑 장미 위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던 날개 무늬가 다른 두 마리 나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엔프피는 그토록 기다리던 엄지 우주의 엄마가 된다. 그것도 한 해를 차이를 두고 태어난 두 여자아이의 엄마가.
엔프피와 잇티제는 이제는 눈만 마주치면 엄지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해져 버린 엄지였었더랬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다.
하루를 함께 살아내고도 밤이 되면 한 때는 엄지였던 우주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엄지 우주를 만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만 해도 아이들 없이 엔프피와 잇티제 둘이만 훌쩍 자유롭게 날아가 몇 날이라도 좀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주에게 점령된 지 6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들이 없이는 무척이나 허전하고 너무나 어색할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덧 그들은 하나의 세트가 되어버렸다.
그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때론 엄지 우주가 불편해할 때까지 뽀뽀를 해가며
어떤 날은 동화책으로 어떤 날은 그들의 생각이 닮았으면 하는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어떤 날은 새가 되기도 어떤 날은 고양이가 되기도 또 가끔은 아기가 되기도 해 가며
그냥 그것으로도 충분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지 우주에겐 그저 따스하게 사랑을 머금은 분홍빛 꽃송이 같은 엄마 아빠의 마음과
하루에 엄지손톱만큼이라도 자라나게 해 줄 매일매일의 맛있는 밥 정도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누군가 자꾸만 찾아와 그것만으론 이젠 안된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결정적 시기라는 매진 임박 같은 충동구매를 선동하는 말로 여러 가지 언어를 알려주어야 한다며 조바심이 나게 하였다.
어떤 이는 또래 친구들 대부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며 비교의 잣대를 제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정성껏 준비해두었던 꽃송이가 너무 작아져 버려 엄지 우주는 이제 더 큰 세상을 향해 나가야만 했고 말이다.
어떤 날은
“엄마, 오늘 내 치마보고 친구들이 아주 난리가 났었어. 자기도 이거 엄마가 사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아주 나 오늘은 인기쟁이였다니까.”하고는 잔뜩 어깨가 솟아서 행복해했다.
어떤 날은
“엄마, 오늘 내가 되게 오랜만에 유치원에 간 거였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당연히 안아주실 줄 알았는데, 그냥 ‘어 왔어?’라고 말씀만 하셨어. 그래서 조금 속상했어.”하며 잔뜩 풀이 죽어하기도 하였다.
엔프피와 잇티제의 우주가 되어버린 엄지였던 우주가 이제는 엄마 아빠에서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엄지의 우주가 넓어질수록 엔프피는 생각하게 된다.
엄지 우주가 모든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왕 풍뎅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엄지 우주를 그저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는 따스한 들쥐 아줌마같은 이들만 만났으면 좋겠다고.
엄지 우주가 두더지처럼 돈 많고 부유하여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곧 깨닫게 된다.
그게 얼마나 엄지의 아름다움도, 빛깔도, 그만이 가진 노래도 저버린 어미 두꺼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말이다.
과거를 살아온 엔프피와 잇티제는 엄지가 맞이할 새로운 오늘과 내일을 알 수가 없다.
그저 엔프피와 잇티제가 알고 있는 엄지가 엄지의 전부가 아니고 말이다.
제비가 되고 싶다.
나의 엄지 우주를 잘 알고 나의 엄지 우주를 가장 그들답게 빛나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그런 제비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을 거다.
그들의 우주는 변하고 있고,
나도 엄지 우주에만 아니라 나만의 우주를 잘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
그게 정말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그래서 난 오늘도 글을 쓴다.
너만이 가득한 우주가 되지는 않아야 하고,
그 안에 단단한 나도 존재하는 우주여야 하니까.
하지만 내 안에 한 때 가득했던 우주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우주가 때로는 나에게 돌아와 편하게 잠시 쉬기도 해야 하니까.
나에게 글은,
나의 엄지였던 우주이기도 하고, 엄지를 키우는 동안 엄지손톱보다 더 작아져 버린 나의 존재를 다시 우주로 키우는 그런 시간이니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