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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r 29. 2021

비 오는 날


장화를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노랑장화를 신고 물웅덩이를 종종 달려가는 모습이 귀여워서였을까

물웅덩이를 밟을 때의 그 표정이 사랑스러워서였을까

아무튼 나도 장화를 사야겠다는

그럴듯한 소비의 건수를 또 하나 발견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은,

밤에 쓰는 글을 좋아하는 것과

가로등 아래 벤치를 좋아하는 것,

밤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벚꽃나무를 좋아하는 것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책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건 필시 노랑장화와는 다른 색깔의 감정일 테다.


얼마 전부터

엄마에게 자꾸만 비가 내린다.

그건 우리 모계로부터 내려오는 센치유전자 탓이라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그냥 그런 날이라고,

피곤해서 그렇다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날도 있었다.

그래서 엄마를 웃게 하는 것들이 옆에 있으면 될까 하는 생각에

주말이면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그래도 엄마에겐 비가 내렸다.


12살이 되던 1월, 몇 컷의 사진과 같이 남은 기억 조각을 남기고

아빠는 먼저 떠났다.

그때부터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

나는 엄마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나에게 엄마는 참 씩씩한 사람이었고, 나의 대장님이었으니까.

그래서 늘 의지했고, 투정 부렸으며, 힘들고 속상한 것은 다 쏟아내며 위로를 받아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이어지는 엄마의 비 오는 날을 보고 있으려니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나도 비를 맞았다.


엄마의 젊은 날은

참으로 고단했고, 바빴으며 어깨가 무거웠을 거다.

동사무소 한 번도 혼자 가본 적이 없었다는 엄마를 두고 야속하게 떠나버린 우리 다정했던 아빠의 빈자리에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어쩌면 내가 아는 엄마는, 내가 오해해왔던 엄마는,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만들어진

사실 본연의 것은 아니었던

의무감과 책임감이 빚어낸 아주 일부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철이 없고 어렸던 나는 그 일부분을 전부라고 생각했었는지

아니 어쩌면 내가 기대고 싶어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뭐가 어디서부터 오해였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사람의 인생이 참 아이러니해서

삶의 여유가 너무나도 고픈 젊은 날엔 센치함을 아름다움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삶의 여유가 매일로 이어져 어느덧 여유가 무료함이 되어버리는 날이 오면 센치함은 그 용량을 이미 꽉 채워 넘쳐흐르게 된다.

엄마에게 다시 센치함이 마냥 아름다움일 수 있다면

엄마에게 삶의 여유가 그저 달콤한 것일 수 있다면

다시 그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엄마의 비 오는 날에,

우산이 필요할지

노랑장화 챙겨 신고 마냥 함께 비를 맞는 시간이 필요한 걸지

아니면 그저 엄마가 비를 흠뻑 맞고 다시 맑고 보송한 곳으로 돌아오길 기다려야 하는 걸지

나는 어떤 것이 엄마의 비를 그치게 하는 것일지 도무지 알지 못해서

오늘도 그냥 비를 맞는 엄마를 본다.


얼른 이 시간들이 지나가길

그런 날이 있었더랬다고 우리 모계 특유의 언어유희를 뽐내가며 그 날을 개그로 승화하길

비를 맞아 한껏 더 싱그러워진 초록의 잎사귀를 아름답다 바라보는

그 날이 얼른 우리에게 와주길


나는 너무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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