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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r 19. 2021

너보다 슬퍼하진 않을게


몇 시쯤 통화가 가능하냐고 연락이 왔다.

안부쯤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았다.

그리고

6시. 전화가 걸려왔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 방식이 그러하듯

대화의 서두는 대부분


밑밥이다.


참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고 말도 정말 조리 있게 잘해요.
그리고 정리시간에도 자기가 한 것뿐 아니라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요.  
영어시간을 아주 즐거워하고 몸짓과 노래로 표현하기를 좋아해요.



다량의 찬사가 몰려왔다.

나는 리액션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받았다.

하지만 느낄  있었다. 무언가 안 좋은 뒷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구나.


자주 사색하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일도 종종 있으며

혼자 조용히 책을 보는 일도 자주 있다.

학기가 시작되고 몇 날동안은 낯설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우선 지켜보았지만

요즘엔 직접 개입해서 왜 친구들과 놀이하지 않는지도 물어보시기도 하신다고.

집에선 어떠냐고.


그렇다. 풀어 말하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시간이 꽤 있다는 말.

이게 진짜 목적이셨던 거다.


난 단단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물렁물렁에 가까운 사람.

그래서 나의 아이에 대해 듣는 촌철살인 같은 팩트체크는 상처와 슬픔이 되어왔다.

그런데 신기했다.

어느덧 달라진 건지, 쬐애금 성장한 건지,

찰나의 다른 내가 발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담담하더라. 내가.



네 선생님, 안 그래도 예온이 통해서

가만히 앉아있을 때 선생님이 종종 그런 말씀 해주신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었어요.

예온이를 주의 깊게 살펴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예온이와 새로운 반에서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거의 매일 나누는데요,

늘 즐거워하고 있었던 일도 재미있게 들려준답니다.

아마 예온이는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다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온이에게 듣기론 5살 때 친했던 친구가 요즘엔 다른 친구와 좀 더 친한 것 같더라고요.

아마 그래서 예온이도 새로운 친한 친구를 찾는 시간.. 뭐 과도기 같은 게 아닐까 해요.

물론 집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긴 해요. 그건 아마도 동생이라는 친구가 늘 자신과 놀아줘서 그런 것 같고요.

조금만  예온이를 지켜봐 주세요.

아 그리고 예온이가 자주 말해준답니다.

선생님이 자기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응원해주신다고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두려운 마음, 조급한 마음이 차올라 쫄보인 본연의 내가 돌아오려고 했지만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예온이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조심스러웠다. 나의 어떤 말이 이 아이에게 도리어 걱정거리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마음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일상의 목소리로  잠자리에 누워 묻던 클리셰스런 질문으로 시작하되, 급하지는 않게 조금은  밝은 톤을 장착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m: 예온아 오늘은 어떤 친구랑 가장 이야기 많이 하고 놀았어?

y: 오늘은 수현이랑 많이 놀았어.

m: 아 예온이 신랑이라고 했던 친구?

y: 응 맞아. 수현이랑 낚시를 해서 팔고 그랬어.

m: 아 그렇구나. 재미있었겠다. 낚시가 아주 잘 되었나 보네. 팔기도 하고. 선생님이 예온이는 영어시간을 참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 정말 그래?

y: 응, (영어시간에 들었으리라 짐작되는 노래를 한바탕 부른다.)

m: 예온이가 진짜 그 시간을 좋아하나 봐. 노래 기억도 진짜 많이 하고 있네? 아, 그리고 선생님이 예온이는 책 보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셨어.

y: 응 맞아. 책 보는 거도 진짜 재밌어.

m: 응 알지. 예온이 집에서도 책 보는 거 좋아하니까. 어린이집에서도 좋아하나 보구나. 그리고 역할 영역 소파에서 혼자 쉬기도 해?

y: 응. 근데 그러면 선생님이 왜 친구들하고 놀이 안 하냐고 물어보셔.

m: 아 그렇구나. 아마도 그건 예온이가 혹시 심심하다거나 뭔가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하셔서 그런 걸 거야.

y: 맞아.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m: 그럼 예온이는 그렇게 앉아 있을 땐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y: 다음엔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을까 생각해. 책 볼 때도 책 보면 재밌는 놀이가 생각나거든.

m:  그런 좋은 방법이 있구나! 근데 예온이가 집에서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어떤 놀이를 할까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지 않아?

y: 응.

m: 그럼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어린이집에서는 그런 방법을 쓰는 이유가 있는 거야?

y: 우리집은 내가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생각해보지 않아도 금방 놀이를   있지.

m: 아, 정말 그러네.

y: 근데 어린이집은 아직 내가 모르는 장난감이랑 놀이가 많잖아. 그치? 그러니까 생각을 좀 해야 해.



나의 생각보다, 어쩌면 어른이라고 하는 나보다 더

이 아이는 단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실은 혼자의 시간이 별로 달갑지는 않지만 의연하게 씩씩하게 나름의 방법과 이유로 견디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우리집 여자들은 대대로 심한 감정이입의 인간들이다.

그 시작이 엄마였을지 외할머니였을지 아님 그 이상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들려주는 이별 이야기, 힘들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어느덧 그 사람이 되어 공감하고 가끔은 그보다 더 슬퍼하며 눈물을 쏟는다.  

난 우리집 여자들의 이러한 점을 좋아했다.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었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는 종종 다르게 생각이 되기도 한다.

엄마라면,

너의 슬픔에 아픔에 가득 공감하지만

너보단 슬퍼하지 않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야 너도 젖어버린 너의 땅을 톡톡 두드려 일어날 수 있고, 그래야 다음엔 그것보단  슬퍼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늘 깊은 감정이입으로 어느덧 도치되어버리던 나 자신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나 보다. 최소한 나의  작고 통통한 친구에게만큼은 말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은

내가 가진 능력치를 최대로 발휘하기도, 반대로 소거시키기도

혹은 내가 갖지 못한, 어쩌면 필요하다고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능력치를 개발하기도 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저 건강하게 걷고 뛰는 것에 신기하고 감탄하던 시간은 어느덧 지나고,

너의 걸음은 빨라지고 이제는 훨훨 날아가겠다 한다.  

네가 이 세상을 지나며 만나게 될,

수도 없는 돌부리와 뾰족뾰족한 따가운 덤불, 드넓은 초록빛 들판, 태양 아래 드리워진 꽃길까지

아직은 가보지 않아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너를 위해

너보다 슬퍼하진 않고

너보다 조금은 더 기뻐해 주며

너보다 한 뼘쯤은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아.


누구보다

네가 행복했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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