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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Feb 21. 2021

소액의 소외감

약간의 본전 생각


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달려간 어린이집 앞,

1번과 함께 나오신 선생님의 손엔 풍선 4개가 들려 있었다.

풍선 막대기에 달려진 금색 풍선 하나, 막대기가 없는 그림이 잔뜩 그려진 흰색, 하늘색, 분홍색 이렇게 세 개였다.

막대기가 달린 금색 풍선은 하원 하러 나오는 모든 아이의 손에 들려진 걸 보니 아마 수료를 앞두고 원에서 하나씩 나누어주셨나 보다 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각 풍선의 주인에 대해 설명을 하는 1번의 눈이 마스크 위에서 참 반짝이더라.

“엄마, 이 하늘색은 리온이 거구요. 여기 그림 많이 그린 이거는 아빠 거예요! 나는 핑크색이 좋아서 내 건 핑크색을 골랐어요.”


자... 어디 보자...

우리 가족이 4명.

풍선이 4개.

그중 하나는 모든 아이가 받아온 원 오브 뎀이고,

스페셜 띵즈는 3개인데 그중 하나는 동생, 또 하나는 아빠, 또 하나는 지꺼면..


뭐야 내 거는?


감정이입 잘하는 1번의 눈에 이 엄마의 서운함이 전해졌는지,

6살 인생 최고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나를 한 번 스캔하더니

“엄마가 오늘 금색 치마를 입어서 엄마꺼는 금색으로 하면 되지!” 하더라.


풋.

요놈시끼 순발력은 좀 있는데?



우리 1번은 아빠를 참 닮았다.

아빠는 자신을 참으로 닮은 1번을 너무나 예뻐한다.

늘 자신을 물고 빠는 자기랑 꼭 닮은 아빠를 1번은 정말이지 좋아한다.

저녁만 먹고 다시 회사로 먹튀(?)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향해 대성통곡을 해대고,

그걸로도 모자라 아빠 서재 문 앞에 겨우 끄적이기 시작한 실력으로 매일매일 사랑의 서신을 작성하여 붙여둔다.


아빠를 이토록 좋아하는 딸이라니!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빠와 딸의 모습이라 생각해왔고,

부디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표현했으면 해왔다.


근데, 그래도 이건 좀 다른 거 아니니?

나의 남편은 요즘 본의 아니게(그래 진짜 안다. 본의는 절대 아니라는 것. 가족을 참 사랑하는 남자라는 건 그래 안다고!!) 가정을 등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너무나 회사 일이 바빠서 주말도 대부분 반납하고 서재나 회사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그런 상황들이 겹쳐 나는 다시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그 휴직을 결정한 것이 나의 희생의 차원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게 우리 모두가(물론 나도 포함이다)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했으니까.


아 근데.. 이렇게까지 내 입지를 줄여버린단 말이지.

내 풍선은 물풍선만 한 사이즈로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순발력으로 떼울라 한단 말이지.


야이 씨..

내가 너네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고

중재하고

협상하고

가르치고

재우고!!!!!!!!!!!!!!!!!

게다가 돈도 벌고!!!!!

느이 아부지까지 내가 먹이고 입히고!!!!!!!!!!!

이 모든 걸 내가 다 하는데!!!!!!

느이 아부지는 뭐 하시노!!!!!!!!


아 진짜 오랜만에 섭섭했다.

아니 처음인가?


과연 이 휴직이 얘네가 진짜 원하는 방향일까

얘네에겐 사실 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닐까 라는

먼 브라질로까지의 삽질을 20대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았다.


이깟 풍선이 뭐라고.

그치 참으로 하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신기하다.

강펀치로도 끄떡없다 여겨지던 강철심장도 아주 작은 실핀 하나에 펑 터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감정이지 한다.

늘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아빠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런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건강하다고까지 생각해왔으면서,

엄청 관대하고 포용력있는 엄마인척은 다 하더니 이깟 막대기도 없는 풍선 하나로 이렇게 옹졸해진다고. 참.

언젠가 말했지만 나는 엄마라는 적성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시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이것을 더 잘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치만 오늘은 참.

풍선 하나가 쏘아 올린 소액의 소외감이 본전 생각나게 한다.



#옹졸하고소외된아주미에게풍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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