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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Apr 21. 2021

그 사진


많은 사람이 귀엽다고 좋아요를 누른 나의 sns 속 사진 하나가 있다.


엄마의 욕심으로 한껏 여자인 척을 한 생명체 하나가 카메라를 향해 터질 듯한 볼을 발사하고,

옆엔 어느덧 15살이나 먹어버렸지만 나이를 잊은 듯 여전히 귀여운 포메가

자기보단 조금 더 큰 옆 자리 그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

아기와 강아지의 조합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작가의 의도도 그러했듯 많은 이들은 그 사진을 좋아했다.


사진은 대단한 힘이 있어

찰나의 움직이지 않는 그 장면 하나로

그날의 감정과 날씨, 듣고 있던 노래까지 플레이시켜버린다.

유독 그걸 잘하는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그 날이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어제 같던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여느 아기 엄마가 그렇듯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와의 하루는

참으로 분주하고 지루하며 고단하고 설레며 행복하고도 화가 나는,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들이 공존하며 채워진다.

게다가 나는 13개월 차이라는 빼박 연년생의 엄마로 그때 당시 뱃속엔 그 보다 더 작은 아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날도 내가 보내고 있던 그저 그런 많은 날 중 하루였다.

해 질 녘이 되자 더욱 고단했고 아이와 동화책도 수도 없이 읽었고 그림도 그렸으며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소재들을 모두 소진했는데 아직 이 아이의 취침시간은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게다가 성공확률이 3할 정도나 될까 하는 이유식 타임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에 한층 더 피곤해졌다.

그날도 나의 아가는 이 엄마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만든 이유식을 반이나 남겼다.

화가 났다.

그 날따라 너무 화가 났다.

도대체 이리도 안 먹는 아이와 하루 세 번이나 돌아오는 이 끝없는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너는 오늘 밤이면 또 그렇게 울어대겠지?

화가 나고 괜히 억울했으며 슬펐다.

어둠이 짙게 내린 다리 위로 분주하게 퇴근하는 자동차 불빛들이 부럽단 생각에 서러웠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는 놀라 쳐다봤고 곧장 울어댔다.

나도 같이 울었다. 그냥 펑펑 같이 울어버렸다.

청량하고 맑은 음악으로 평화롭게 흘러가던 공기가 어른 하나와 아기 하나의 끝없는 울음으로 꽉 채워져 버렸다.


엄마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매일 이렇게  먹으니까 몸무게가  늘잖아. 엄마는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엄마를  도와줘? ? 도대체  그러는 건데!! 왜, 왜왜!”


알아듣지도 못할 정제되지 않은 어른의 단어로 그냥 호소하듯 쏟아냈다.

이렇게 감정선이 기와 승을 건너뛰고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수 있다니. 참.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그날 밤에도 여전히 아이는 새벽에 울어댔다.

매일 밤 울어대던 아이였지만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아까 오후에 있었던 그 일이 아이에게 두려움으로 작용한 것만 같았다.

큰소리는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감정을 작은 너에게 그렇게 쏟아내진 말았어야 했는데..

옅게 비추는 수면등에 의존하여 아이를 보며 또 울었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너도 힘들지. 너도 처음인 이 낯선 세상을 살아내느라 너무 힘들지.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소중한 엄마의 친구인데..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우리 아가.


그 사진은 그런 사진이다.

모두들 그저 귀엽다고 행복한 사진이라고 좋아요를 눌렀지만

나만은 죄책감으로 괴로움으로 미안함으로 채워진 회색빛 기억의 플레이 버튼이 눌려지는 그런 사진이다.


엄마의 시간은 매일이 그런 날 같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날 것의 나와 직면하게 되는 시간.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은 아무도 모르는 고독한 시간.

매일 새로운 능력치가 요구되지만

매일이 그저 그런 날 같은 전혀 새롭지 않은 시간 말이다.


하지만 엄마만 알고 있다.

늘 나를 향해 말갛게 웃어주는 이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이 너무나도 귀하다는 것을.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담뿍하게 경험하며 흘러가는 감격스러운 나날이라는 것을.

이 아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감히 내 생애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단언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엄마의 지루한 시간은 돌아보니 참으로 짧다.

어느덧 그 아이는 날개를 달고 더 먼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며

어느덧 나는 그 아이가 멀리서 내려다볼 아주 작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그냥 오늘을 오늘로 살아내자.

날카로운 말로 표정으로 생채기를 내기엔 오늘이 너무 짧고 소중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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