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자몽 Jul 28. 2021

꽉 찬 빈 말


얼마 전 맥도날드에 BTS세트가 나왔었다.

그게 하도 불티나게 팔려서 엄청 화제가 되었더랬다.

사실 신메뉴인 것도 아니고 그저 기존의 메뉴에 포장만 보라색을 가미하고 그들의 얼굴이 좀 들어갔을 뿐인데.. 껍데기가 뭐라고.. 참 신기했다.

사람이 내실이 있어야지 겉만 번지르르한 게 무슨 소용이냐? 하는 말을 참 촌스럽다 생각했었는데 내가 나이가 먹은 건가, 어느덧 그것과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좀 그런 것 같아 얼른 촌스러움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어본다.

껍데기가 중요할까?

좀처럼 디크레셴도 생각이 없는 듯한 요노무 몸뚱이를 커버하기 위한 코디,

이것도 껍데기라 하면 껍데기일 수 있겠네.

아기자기한 포토존 투성이지만 커피는 절반이나 남기게 되는 어떤 카페,

몇 십만 원을 훌쩍 넘는 디자인 체어나 조명..

어머, 난 껍데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저 BTS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주머니인 것뿐이었나 보다.

그치만 정말이지 빈 말은 사절이다.

포장만 그럴듯하게 예쁜 리본을 메어 던져진, 속은 텅 비어있는 말.

빈 말을 왜 할까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빈 말이다 라고 생각해왔다.


얼마 전 우리집에 친구가 다녀갔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나의 꼬마친구들과 집안에 갇혀버린 나를 위로차 방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참으로 결단코 반드시,

친구는 친구끼리 만나야 한다.

나의 두 딸들과 함께 만나는 건 그냥 정신없는 전쟁통에 친구를 끌어들이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나의 성향상 방문한 사람과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느라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기를 더 많이 빨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괜히 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이고, 저렇게 애들한테 리액션해주느라 얼마나 피곤할까.'

'내 애들 나나 예쁘지, 뭐가 그렇게 예쁘겠어.' 등등 오만 생각이 그 시간 내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어느 순간부턴 뒷골이 당기기 시작했고, 친구를 보내고 나서는 아찔해질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참 지랄 맞은 성격이다

3시간쯤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는 집에 도착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고마웠다.

함께 있는 내내 친구의 눈에서 한 켠에 차지한 진짜 마음이 읽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준 친구 덕에 마음이 좀 놓였다.

빈 말은 어쩌면 사실 그렇게 텅 비어있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빈 말 안엔 배려나 사랑 같은 분홍색이 드리워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생각해온, 좀 거창하게 말해서 신념 같은 것들에 예기치 못한 충격이 가해질 때가 있다.

가령 오늘처럼 말이다.

빈 말이라는 걸 알지만 어떤 빈 말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따스한 뭔가가 꽉 찬 빈 말도 있다는 것,

그래서 비어있어 공허한 소리일 뿐이라 치부해왔던 그것이 누군가에겐 내가 의도치도 않았던 큰 것으로 쿵 하고 자리를 차지할 만큼 꽉 찬 밀도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고 징징거리기만 했지 

사실 나는 아직도 참 모르는 것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많아서

그것들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럴듯하지만 참 예쁘지는 않은 모양으로 마음에 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말은 다른 이에게 어떤 모양으로 색깔로 전해지고 있을까.

기왕이면 내가 의도치는 않았음에도 그에게 담뿍함으로 자리 잡았으면

기왕이면 내 의도와 꼭 맞게 그에게 따뜻함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외계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