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 바다가 들려(Hear The Sea)
지금 좀 충격을 받았다. 이 곡의 작사, 작곡, 편곡자가 케이팝 처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황현 작곡가(대표곡: 샤이니 <방백>, 세븐틴 <좋겠다>, 온앤오프 <사랑하게 될 거야>, 레드벨벳 <Day1> 그 외 다수)였다는 사실을 이제 막 알았기 때문이다. 보통 어떤 곡이 너무 좋으면 과연 어떤 천재만재 선생님이 이 곡을 만드셨나 궁금해져서 작사, 작곡가를 반드시 확인하는 편인데, 이 노래는 그저 감상하기 바빠 미처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2017년에 발매된 레드벨벳의 여름 미니앨범 ‘The Red Summer’의 수록곡 <바다가 들려(Hear The Sea)>이다.
이 앨범은 2017년 여름에 가장 핫했던 곡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레드벨벳의 대표곡으로 자리한 <빨간맛(Red Flavor)>이 수록된 미니앨범이다. 앨범에 실려있는 다섯 곡 모두 한여름의 뜨겁고도 생기있는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앨범 발매 당시 <You Better Know>, <Zoo>, <여름빛(Mojito)>, <바다가 들려(Hear The Sea)> 네 곡 전부 타이틀곡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더랬다. 이후 여러 해가 바뀌었어도 여름만 되면 여기저기에서 이 곡들이 들려온다.
<바다가 들려>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여름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듣기 딱 좋은 미디엄 템포의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식어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까만 밤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적당히 따듯한 모래를 맨발로 거닐고 있는 느낌도 든다.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든, 그것은 모두 편안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그려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곡을 레드벨벳 노래 중 최애곡으로 삼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다가 들려>를 처음 들은 날, 나는 혼자서 서울 연남동의 경의중앙선 숲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심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겪던 중이었는데, 언제까지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순 없어서 마음을 환기하기 위해 애써 그곳까지 찾아간 것이었다.
아무런 음악도 듣지 않고 생각에 잠긴 채로 한참 길을 걸었다. 당시 갖고 있던 고민에 관한 질문과 답을 머릿속에서 혼자 주고받으며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상황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생각했다. 오랜만에 햇볕 받으며 산책을 하니 마음속에 끼어 있던 안개가 점점 걷히는 듯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주 후련했다.
머릿속이 다 정리되었을 때쯤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바다가 들려>를 재생했다. 그런데 노래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음악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난생처음이었다. 깊은 우울 속에서 빠져나온 직후에 들은 곡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노래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음악도 언제든 들을 수 있는데 그간 나는 왜 그렇게 불행해했을까 싶었다. 그만큼 이 곡은 나에겐 큰 감동이었다.
<바다가 들려>는 노래 자체가 좋아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치유의 경험이 녹아있는 곡이기에 더 애착이 가고 특별하다.
레드벨벳은 다섯 멤버의 음색의 합이 잘 맞는 그룹이다. 빠른 템포의 댄스곡보다는 잔잔한 곡에서 그 합이 더 잘 드러난다. <바다가 들려>에서도 개인 파트는 물론이거니와 다 같이 함께 부르는 후렴구에서도 모든 멤버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 시너지가 빛을 발했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점은, 후렴을 다섯 멤버가 부른 것처럼 들리지만 1절과 2절 후렴을 각각 다른 멤버들이 불렀다는 것이다. 아래 두 영상에서 이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바다가 들려>를 애정하는 케이팝러로서 위의 두 영상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레드벨벳 멤버들의 섬세한 보컬 표현 능력과 황현 작곡가의 섬세한 디렉이 만나 이와 같은 명곡이 탄생했음을 알게 해준 영상이었다. 꼭 타이틀곡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작업기를 그린 콘텐츠를 더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이 노래를 들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