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라 Oct 21. 2021

내가 체중계를 내다 버린 이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운동의 이응(ㅇ)자도 관심이 없던 내가 당차게 요가원에 등록을 하게 된 계기는 하나였다.


‘다이어트’


어렸을 때부터 나는 워낙 살이 잘 찌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체질이어서 평생을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들에게 ‘살쪘다’라든가 ‘살 빠졌다’라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이별을 한 후에도 얼굴이 퀭해지는 건 잠시였을 뿐, 며칠만 지나면 다시 원상 복귀되곤 했다.


그러던 내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1년 만에 몸무게가 5kg 이상 불어났다. 매일 점심 식사를 한 후 후식으로 고칼로리의 음료를 꼬박꼬박 챙겨 마시고, 일 하는 동안 과자나 초콜릿 등의 군것질을 하고,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자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밀가루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저녁으로 떡볶이나 면 종류를 먹을 때가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집 근처엔 줄 서서 기다릴 가치가 있는 떡볶이 맛집도 있다.


이런 생활이 1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1년 전까지만 해도 잘만 입고 다니던 바지의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가장 살이 많이 찌는 시기인 고등학생 때도 3년 내내 몸무게에 변함이 없던 나로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돈을 써서라도 운동을 다녀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엔 운동을 다닐 거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먼저 요가원에 다니고 있던 친구가 한번 상담받아보라며 요가원을 추천해주었다. 그 요가원은 우리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데다 마지막 수업 시작 시간이 9시 10분이기 때문에 퇴근 후에 가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자고로 운동은 무엇을 하든지 ‘집 가까운 곳’이 최고라 하였다.)


원장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던 날, 선생님은 내게 요가를 배우려는 목적을 물어보셨다.


“다이어트하고 싶어서요.”


며칠 후 첫 수업을 들으러 가서 난생처음으로 인바디를 쟀다. 결과는 참혹한 수준으로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체지방률은 매우 높고, 근육량은 낮고 충격적인 BMI 수치에 복부 비만율까지... 내가 참 건강관리에 소홀했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밀가루와 술을 끊고 원장 선생님이 짜주신 식단대로 규칙적이고도 건강한 소량의 식사를 했다. 오전 간식과 오후 간식, 저녁에 먹을 음식들까지 부지런하게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엔 하루도 빠짐없이 퇴근 후 요가원으로 향했고 주말에도 약속이 없는 날엔 하루 종일 홈트를 했다. 한 달에 2kg씩 감량해 최종적으로 8kg을 빼는 것이 목표였다.


다이어트를 하는 덴 많은 돈이 들었다. 또한 부지런해야만 했다. 닭가슴살, 무지방 우유, 바나나, 고구마, 통밀빵, 단백질 보충제, 각종 과일, 저칼로리 곤약 젤리 등 정기적으로 쟁여놓아야 하는 식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더군다나 아침밥을 반드시 챙겨 먹어야 했기 때문에 아침잠을 줄여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그럼에도 점점 몸무게가 줄어들고 눈에 띄게 살이 빠지는 게 보일 때면 몇 번씩이나 거울 속 변해가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다이어터로서의 고통을 잠시 잊곤 했다. 그렇게 완전히 다이어트에만 몰두한, 치열한 5개월을 보낸 끝에 결국 나는 총 9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살 빠졌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말이었다. 6월의 어느 날 인바디를 쟀을 때 ‘저지방 근육형’이라는 여섯 글자를 마주했던 때의 짜릿함 또한 잊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끝내고 유지어터로 돌입하기로 했던 날 나는 수개월 간 옆에서 나의 다이어트를 도와준 요가원 원장선생님과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절대로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을 거란 걸 알기에.




유지어터가 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만 해도 유지하는 게 다이어트보다 쉽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히 먹을 수도 있고 먹는 양도 늘어났는데, 왜 사람들은 유지가 더 힘들다고 하는 거지? 하지만 유지어터가 된 후 처음으로 인바디를 쟀을 때 왜 유지가 더 어렵다고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식단에 변화를 주니 근육량이 금방 떨어지고 체지방량은 훌쩍 올랐던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식단 조절에 실패했거나 운동량이 부족했을 거라고. 그래서 다시 다이어터 때처럼 식단을 조여주기 시작했다. 운동량은 전보다 훨씬 더 늘렸다.


그 후 또다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인바디를 쟀다. 결과는? 근육량은 또다시 하락세, 체지방량은 상승세.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들도 억지로 참아가면서 더운 여름날에도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운동했는데 도대체 그래프는 왜 저렇게 변해버린 건지. 혹시 인바디 측정기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필라테스 강사인 언니에게 하소연을 하자 언니는 내게 운동도 운동이지만 운동량이 많은 만큼 잘 먹어줘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때부터 내 정신력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졌다. 인바디 수치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이론적인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두 달 동안 점점 사라져 버린 의욕을 다시 불태우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숫자와 음식에 엄청난 집착과 강박을 갖게 되었다.


매일 거울을 보며 조금이라도 살이 붙은 것 같으면 강박적으로 운동을 하고, 가장 몸무게가 덜 나갔을 때의 내 전신사진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고, 음식들의 칼로리와 몸무게에 집착을 하며 스스로를 최대한 옥죄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때로는 권태로운 시기의 연인들처럼 내내 우울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기도 했고 맘에 들지 않는 몸무게 때문에 힘이 다 빠져 요가 동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수업 도중에 뛰쳐나가 엉엉 운 적도 있다. 보상 데이를 맞이해 ‘오늘만큼은 맘 편히 맛있는 걸 먹으리라’ 비장한 표정을 한 채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도 무의식적으로 가장 칼로리가 낮은, 무조건적으로 건강한 음식만을 찾았다. 그것이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거의 난 미쳐가고 있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다이어트를 지속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선 이런 나를 보고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운동하면 되잖아’라고 했다. 정말로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몸무게가 오르는 일을, 인바디 결과가 더 안 좋아지는 일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만든 ‘저지방 근육형’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이 모든 생각들이 다 너무 바보 같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다이어트 식단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맘 편히, 완전하게. 병적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던 내가 단번에 숫자와 식단 강박의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여행이었다.


그 즈음(일본 불매운동이 있기 전이었다) 나는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로 워킹 홀리데이를 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가 완전한 나로 마주할 수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었다. 일본에서 친구들이 직접 데려가 준 맛집들과 추천해준 다양한 일본의 음식들은 나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것들이어서 먹는 내내 다이어터로서의 죄책감 없이 온전히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고작 3박 4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4일 동안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돌아다니고, 맛있는 걸 먹고, 사진도 찍으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고작 몸무게나 인바디 같은 수치 때문에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고,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각박한 미의 기준에 맞추어 날씬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다이어트 식단을 일일이 다 지키며 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맛있는 걸 먹을 때, 열심히 요가 수업을 들으며 땀 흘릴 때,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 때, 글을 쓸 때 행복을 느낀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자 스스로를 옥죄고 있던 어떠한 사슬이 탁- 풀려버린 것처럼 완전한 해방감을 느꼈다.




더 이상 나는 매일 아침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간다거나 전신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 않고 ‘맛있게’ 먹는다.


살을 빼서 보상을 얻는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 특정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완벽한 인바디 수치나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집착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다. 그 욕심을 덜어내니 이토록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였던 짐을 덜어낸 느낌이다.


어쩌면 앞으로 나는 전보다 살이 찔지도 모른다. 체지방량이 늘어날 수도 있고 몸무게가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몸매가 어떻든 말든 그건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어떤 행복으로 채울지 지금 당장 내가 뭘 먹고 싶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