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요지경이었다

서른까지 D-6

by 끼라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요지경이었다.


20대 초반, 나는 열심히 연애를 했다. 대학생 때는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 '3초 애교 스킬' 같은 글이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나 또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 '남자가 싫어하는 여자 말투' 같은 글을 메일함에 스크랩해놓고 자주 참고를 했었다.


20대 중반이었던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내 또래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30대 남성 가해자 김성민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사건에 분노하는 나와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졌고(그 애는 내가 다른 남자랑 바람이 나서 헤어졌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추한놈), 그날 이후로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


20대 후반, 나는 가부장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을 벗어던졌다. '여자'가 되려고 노력하기를 중단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성애에 미쳐버린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연애를 하지 않고도 완벽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법을, 외로움은 주입식 허상임을 알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트위터에서 봤던 글들 중 정말 공감했던 글이 하나 있다.


빨간약 먹고 나서 가장 좋은 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사랑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 거다. 예쁘게 보일 필요도 없고, 내가 나를 검열할 필요도 없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를 내가 좋아해준다. 이게 얼마나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지 정말 눈물이 날 만큼 좋다.


과연 페미니즘을 빼놓고 나의 20대를 논할 수 있을까? 2016년 이후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무나와 막 연애하지 않은 것, 실수로 결혼해버리지 않은 것이다. 삶의 터닝포인트를 20대 중반에 맞이할 수 있었던 게 신의 한 수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단 하나의 선택이라도 바뀌었더라면 그게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지, 그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니까.


사랑받으려 애쓰던 20살의 내가 허물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는 서른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먼저 깨달은 많은 여성이 글로써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게 그냥 혼자만 잘 먹고 잘살다 가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을 통해 배웠다. 그들처럼 나 역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에 서서 불의를 향해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진짜로 서른이 된다. 체감상으로는 이제야 23살~24살쯤 된 것 같은데, 또 그렇다고 하기엔 20대로 보낸 10년 만큼의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놀았다. 무엇보다 20대가 끝나는 것에 미련이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뭐든 제대로 열심히 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리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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