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현실 직시하기
헤어짐을 결심하게 만든 숱한 날들과 결정적인 계기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이별 후에는 대부분의 기억이 미화되는 듯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진과 영상을 포함해 모든 흔적을 정리한다 해도 말이다. 눈물 나도록 웃겼던 순간들, 같이 있을 때의 안정감과 편안함, 그 애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들, 손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가벼워졌던 발걸음, 새벽에 나눈 진솔한 대화, 함께 듣던 음악, 함께 본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들...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는데. 괜히 감상에 젖어서 '이땐 이랬지...', '그때 참 행복했는데...'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꾸만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데려가면 이별의 아픔에서 헤어 나오기가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단순히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자. 우리가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둘 중 한 명이 잘못을 해서 헤어졌을 수도 있고, 둘 중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는데 단지 서로(또는 한쪽이) 마음이 식어서 이별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마음은 남아 있지만 여러 가지로 잘 맞지 않아 서로가 독인 관계여서 끊어내야만 했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내가 확실히 이별한 것인지도 모르게 상대방으로부터 잠수 이별을 당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뭐가 됐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어진 이유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면 결국에는 이별이 옳았다는 결론만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재회했을 테다.
지속적으로 편향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일종의 현실도피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건 자기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내가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없도록 스스로 방해하는 꼴이니.
그러나 이별 후에는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더 잘 대해줘야 한다. 마음이 많이 다친 때일수록 나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재우고, 더 잘 보살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지 말고. 왜냐하면 나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를 가장 잘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지난날들이 떠오른다면 생각을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면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현재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게 행복해 보인다면 그대로 두고, 안타깝거나 불행해 보인다면 생각을 멈추자.
언제까지고 이별의 아픔 속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실을 도피하지 말고 직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