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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호 May 12. 2024

20대 연애와 30대 연애

에세이

“나의 20대 연애를 돌이켜보면 좀 가식적이었던 것 같아”

친구와 술잔을 맞추고 쓰디쓴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연인이 사귀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점점 편해지잖아. 근데 편해질수록 여자친구들이 내 본 모습에 점점 실망하는거야.” 

친구는 텅 빈 나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네 본모습? 왜?”

“처음엔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무작정 잘해줬거든. 100%도 아니고 120%. 딱 이상적인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내 자신을 꾸며냈다고 해야하나?” 

“뭐 어떤 부분을?”

“음..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여자친구한테 연락 잘해주는 거랑 데이트할 때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

“내가 집돌이라 집에 있으면 연락이 뜸해지거든? 집에서 게임하는 걸 좋아하는데 게임 싫어하는 여자들이 많으니까 여자친구한테 취미로 게임한다는 얘기를 못 꺼내고 몰래 한 적이 많았지. 그리고 상대방이 나랑 데이트할 때 재미없어서 지루해할까봐 걱정되는거야. 나는 MBTI J도 아니라서 철저하게 계획하는 거 싫어한단 말이야. 내 성격에도 안 맞고. 근데 데이트코스 짤 때 만큼은 치밀하게 계획했어. 진짜 심할 때는 데이트 나가기 전에 퇴근길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걸리는 시간, 기타 소모되는 실제 시간까지 직접 계산해서 테스트 한 적도 있었는데 그만큼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조금만 계획에서 벗어나도 스트레스 받고 그랬거든. 근데 또 그렇게 꾸며진 모습들을 여자친구들이 좋아해주는거야. 그러니까 그 경험들이 나한테는 정답처럼 느껴졌거든. ‘아, 연애는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이렇게 해야 여자들이 좋아하는구나’ 생각 한거지.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게 물었다.

“근데 좋은 모습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 거 아냐?”

“나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웠던 것 같아. 사람은 쉽게 안 변하잖아. 여자친구는 점점 변하는 내 모습에 서운해하고 그 과정에서 자주 다투고 이별까지 가버리니까. 여자들이 내 진짜 모습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자책하게 되고 내 본모습을 점점 더 감추게 되더라고.”

우리는 소주 잔을 다시 부딪혔다. 소주는 여전히 쓴 맛이 났고 점점 취기가 올랐다. 쓰린 속에 계속해서 소주를 퍼붇고 싶었던 공허함도 조금씩 꺾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자 입장이 이해되긴 해. 처음부터 본모습으로 다가갔으면 실망할 일도 없었을텐데 변한 것이 문제였으니까. 연애 초기만 놓고 보면 내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인거잖아. 20대 때는 줄곧 그런 연애를 해왔는데 30대가 되니까 이렇게 연애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도 들고 슬슬 지치기도 하고 더 이상 20대때처럼 연애할 엄두가 나질 않더라. 꾸며진 연애는 오래가지도 않을 뿐더러 서로에게 상처만 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젠 연애할 때 내 진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하거든. 서로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건강한 연애인 것 같아.”

“그래. 마음이 잘 맞는 사람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를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친구는 스마트폰 화면을 툭툭 치더니 시계를 보더니막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이거 막 잔 하고 일어나자”

“그러자”

나는 마지막으로 소주를 마셨다. 그토록 쓴 맛이 나던 소주도 이제는 익숙해져 희석된 탓일까 의연하게 삼켰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고 친구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나는 친구가 내민 카드를 잽싸게 가로챈 후 종업원에게 다른 카드를 건네주었다.

“아냐 아냐 오늘 술 값은 내가 낼게. 이 카드로 계산해주세요.!”

계산을 마치고 우린 술집을 나왔다.

“잘 먹었다 영호야!”

“괜찮아. 평소에 네가 많이 사잖아.”

“그나저나 우린 언제 제대로 된 연애하냐?”

“그러게..”

각자 인연에 대한 기약없는 만남을 고대했지만 우린 더 이상 연인의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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