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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호 May 22. 2024

달콤씁쓸 레몬에이드

구매목록: 레몬에이드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 화면을 손으로 툭툭 쳤다. 현재시간 오후 12시 28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내 목을 조여온다. 면접은 오후 2시지만 1시간 30분 일찍 도착했다.  여유롭게 도착해서 한숨 돌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초조했다.


한 달 전, 

위잉.. 위잉.. 위잉 


 조용한 사무실에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누구한테 전화 왔는지 핸드폰 화면을 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만났던 내 인생 첫 번째 팀장님이셨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싶어 회사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은 안부 인사와 함께 용건만 간단히 말씀하셨다. 자기 부서에서 경력직을 구하는데 면접 한 번 볼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간단명료한 성격이셨던 팀장님은 여전히 그대로 셨다. 쓸데없는 말없이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만으로도 잊고 있었던 긴장의 감각이 깨어났다. 첫 회사 퇴사 후 다른 회사도 다녀봤지만 업무 강도로는 팀장님이 가장 높았다. 매일같이 새벽 2시~3시까지 야근함은 물론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즉시 불려 가서 혼났기 때문에 일하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팀장님을 팀장으로 모시고 있다면 그 팀원은 모든 일에 있어서 최고의 퀄리티를 항시 유지해야 했다. 간혹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면 몰라서 틀릴 때보다 더 크게 혼나곤 했다. 문서에 쓰이는 단어 하나하나 의미가 모호하거나 부적절하게 쓰이면 팀장님 자리로 불려가 어떤 의미로 이 단어를 썼는지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했다. 


 팀장님은 목소리가 크셨다. 팀장님 자리에서 혼이 나면 같은 층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래층 사람들도 누가 혼나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팀원들은 혼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 속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어떤 팀원은 팀장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온몸의 털이 선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팀장님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였다. 실적이 좋아 항상 결과로써 증명했고 업무적인 능력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팀장님이셨다. 


 사실 팀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 마음이 들떴다. 팀장님하고는 퇴사 후 종종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팀장님은 퇴사 후 F&B (Food&Beverage) 분야에서 매운 라면으로 유명한 기업에 이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팀장님과 다시 일하게 되면 높은 업무 강도를 감당해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웠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반드시 살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번 면접에 올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류전형 통과 후 첫 면접 일정을 고지 받았고 한 달 정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준비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겼다. 면접관들의 여름휴가 이슈로 일정이 앞당겨져 면접을 부랴부랴 준비해야 했다. 면접날은 성큼 다가왔고 내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서 불안했다. 나의 계획이 완벽하게 틀어졌기 때문이다.


 8월 한여름인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쨍쨍했다. 날은 덥고 피는 말라갔다. 

평소 커피를 마실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데 날이 덥고 기력이 쇠할 땐 상큼한 음료수를 마신다. 카페에서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주문하고 면접 준비를 했다. 준비해온 노트를 차분히 다시 봤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사실 평소에 나라면 면접 보는 것에 대해 별로 긴장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 면접이 유난히 긴장됐던 이유는 반드시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대기업 면접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주문한 레몬에이드가 나오고 한 모금 마시니 마음속 먹구름이 걷히듯 우중충한 느낌이 조금은 상쾌해졌다. 상큼한 레몬에이드가 긴장한 마음을 조금 달래주었다. 시계를 보니 면접 시간이 다 되어갔다. 주문했던 레몬에이드를 테이크아웃 잔에 옮겨 담아 면접 볼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했다. 로비에 있는 직원 안내를 받아 직원 휴게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면접 시간이 되자 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메고 온 가방과 테이크아웃한 레몬에이드는 휴게실 테이블에 두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안내해 주는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긴장되시죠?”

“네”

“그래도 여기 회사가 면접 분위기는 편한 편이어서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거예요”

“아 정말요? 다행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사시는 곳은 어디세요?”

“아, 저 신림 근처에 살고 있어요”

“오~ 신림이면 출퇴근하시기에 거리가 그렇게 멀진 않네요!”


 띵동. 6층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엘리베이터 도착 신호음이 울렸다. 

“이쪽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면접 잘 보시고 파이팅 하세요~!” 방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 손잡이를 당겼다.


 눈앞에 3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1차 면접이라 그런지 면접관들이 생각보다 젊은 분들이셨다. 한 명씩 소개해 주셨는데 합격하면 함께 일하게 될 관련 부서 팀장님들이셨다. 면접관 3명 중엔 나와 함께 일했었던 팀장님도 계셨다. 긴장됐지만 옅은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인사 그리고 자기소개와 함께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됐다.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면접관들의 눈을 쳐다봤는데 면접관들은 내가 작성한 이력서, 포트폴리오, 경력기술서를 유심히 보고 자기소개가 끝나자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기업 면접은 처음이라 다소 주눅이 들었지만 면접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면접관은 그동안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있다면 그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주로 맡았는지 물어봤다. 내가 준비한 예상 질문대로 면접이 진행되어서일까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워밍업 수준이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제가 질문 하나 드릴게요. 영호님은 그동안 회사 생활하시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프로젝트가 성과를 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듣고 생각이 길어졌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려봤을 때 딱히 떠오르는 답변이 없었다. 나에겐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처리했지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해서 프로젝트로 이어진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첫 회사 본부장님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어르신들께 안부 인사를 전하곤 하는데 그때 점심 약속을 잡게 된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안부와 근황을 묻다가 본부장님께 내 고민을 말씀드린 적이 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구조가 아니라 단순 반복 업무만 요구되었고 해당 업무의 수적인 양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지켜본 결과 더 이상 내가 이곳에서 배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지인들은 같은 시기에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경험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별 볼일 없는 프로젝트만 맡게 되었고 다음에 가게 될 회사에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경력으로 인정해 줄지 의심이 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이 반복되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상태였다. 고민하게 된 시점은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던 때였고 지금 당장 이직을 하자니 짧은 시기에 회사를 옮겨 다니는 기록이 향후 면접 때 불이익으로 다가올까 봐 마음에 걸렸고 지금 회사에서 1년만 채우고 이직하는 게 맞는 판단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연차가 높은 분께 여쭤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연락이 닿았던 본부장님께 고민을 털어놓았고 본부장님은 지금 회사에서 최소 1년을 채우고 이직하는 것을 추천해 주셨다. 고민 상담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대기업 면접 기회가 오게 되었고 결국 나는 면접실에 앉게 되었다.


 “천천히 생각하시고 답변해 주셔도 돼요”

면접관의 말이 내 생각을 끊었다. 면접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더 초조해졌다. 더는 시간을 끌면 안될 것 같아서 최선의 답변으로 말씀드렸다.

 “제가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끈 경험은 없지만 제가 맡은 브랜드 별로 콘텐츠 기획 부분에서 성과를 얻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단순히 말하면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 다른 컨텐츠에 비해 얼마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 수치를 덧붙여 말했다.

 “혹시 영호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과는 어떤 기준인가요?”

면접관이 더 깊숙하게 파고드니 점점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을 땐 정량적으로 답변한 것이 최선의 답변이었다. 이미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생각을 최대한 다듬어서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저는 경쟁사 별로 발행되는 콘텐츠 성과를 매일 체크하고 있는데요. 체크한 컨텐츠 반응 데이터에서 평균값을 도출하고 평균적인 수치보다 제가 기획한 컨텐츠 반응이 높다면 좋은 성과를 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름 잘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면접관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면접관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는지 비슷한 질문을 다시 했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비슷한 답변을 반복했다. 느낌적으로 완전히 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박 팀장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네. 저도 없습니다”


 면접이 끝났다. 면접관들은 나에게 미소를 띠며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웃으면서 고생하셨다고 답례했다.

면접실을 나왔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면접관들이 마중을 나왔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1차 면접 결과는 추후에 인사팀에서 연락 주실 거예요” 면접관의 안내를 받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45분이 지나 있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면접을 보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면접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다시 직원 휴게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한숨 돌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블 위에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채로 남겨진 레몬에이드가 보였다. 절반 정도 남은 레몬에이드를 손에 들고 회사를 나왔다. 상큼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더니 조금은 마음이 환기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다음에 잘하지 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고 나는 집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며칠 뒤, 팀장님께 카톡이 왔다. 팀장님은 1차 면접에서 팀장님들의 피드백을 취합하여 전달해 주셨다. 2차 임원 면접 때는 1차 면접 때처럼 하면 안될 것 같고 준비를 많이 해야 붙을 것 같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1) 본인 핵심 역량 요약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것

2) 설명하는 화제, 주제를 깊이 있게 주관을 가지고 설명할 것 (깊이 없어 보였고 준비 안한 것 같은 느낌이 듦)

3)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한 업무 중 성과가 좋았던 사례 자신있게 설명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경력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성과 좋았던 이유가 뭔지

-결과에 대한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업무 과정, 어떤 역할로 기여했는지

4) 말투, 행동(태도)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맺음 필요

5) 옷차림, 머리스타일 단정하게 필요 (임원들은 외모도 중요하게 봄)


 문자를 받고 마음이 착잡했다. 피드백을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면접을 못 본 것 같다. 2차 임원 면접 기회가 주어지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 

 나는 피드백을 받은 이후 임원 면접을 열심히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1차 면접 결과 연락이 통 오질 않았다. 보름이 지났을 무렵 인사팀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메일을 확인한 후 나는 씁쓸한 결심을 했다. 


본부장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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