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지음
고3 수능이 끝나고 면허를 따고 단기 알바를 다닐 때, 하루는 파충류를 왕창 키우는 친구가 파충류 숍에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아파트 자택에서 한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파충류 숍이었다. 파충류 브리더인 아들이 만든 공간을 아주머니가 번창시켜 파충류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라 했다.
다양한 도마뱀과 뱀을 키우는 친구의 집보다 몇 배는 스케일이 큰 그 파충류숍에서 동물을 좋아하는 나의 눈이 계속 돌아갔다. 친구가 새로 분양받을 도마뱀에 대해 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내 눈은 레오파드게코 새끼들이 모인 케이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 시선을 캐치하신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친구는 여기 꼬리 잘린 새끼 한 마리 가져가서 키워볼래?” 도마뱀이라 꼬리는 금방 다시 날 테지만 꼬리가 잘려 있는 모습이 왜인지 거부감이 들어 염치 없이 말했다 “저.. 혹시 여기 꼬리 있는 녀석은 안될까요?”
아주머니의 호의에 염치 없이 던진 말 때문에 왈칵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호쾌하게 꼬리 달린 녀석을 건네주시는 아주머니에게 보답하고자 녀석을 건강하게 무럭무럭 키우기로 다짐했다.
녀석의 이름은 이모티콘처럼 둠칫 둠칫거리는 움직임에서 착안해 이름을 두둠칫이라고 지어주었다.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내 새끼 먹여 살린다고 얼마 되지 않는 알바비로 밀웜을 마구마구 주문했다. 밀웜은 개체 특성상 사육장이 따뜻해지면 빠른 시일 내 번데기로 변태하고, 성충이 되기 일쑤였는데, 움직임이 적은 번데기를 핀셋으로 집어 두둠칫 눈앞에서 흔들어 대면 곧잘 낚아채 먹었다.
도마뱀을 키우기 위해선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돈 없는 학생이라 열선은 깔아주지 못했다. 거대하고 투명한 김치 반찬통에 숨구멍을 뚫고, 신문지와 키친타월을 깔아준 뒤, 은신처와 물 접시, 먹이 접시를 두고 도톰한 이불로 반찬통을 감싸 어둡고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고3 말부터 대학교 입학까지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던 내게 두둠칫은 위안의 존재였다. 대학교 수업을 마치면 집에 와 두둠칫의 상태를 확인하고 핸들링하며 놀아줬다. 그리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날에도 매번 두둠칫을 꺼내 쓰다듬었다. 하루는 취한 상태로 두둠칫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머리가 새하얘져 침대를 살펴봤으나 다행히도 두둠칫은 없었다. 어두운 곳에서 지내는 종의 특성을 떠올려 구석진 침대 밑, 옷장 밑 등 어두운 곳을 돌아다니며 귀를 대보니 바스락 소리가 나서 먼지가 왕창 묻은 두둠칫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넘게 지극정성으로 키우니 새끼였던 두둠칫은 어느새 성체가 되어 두툼하고 건강한 꼬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나이 21살 군 입대는 다가왔고, 내가 군대에 가면 집에 두둠칫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분양비 4만 원을 받고 파충류 카페 타 회원에게 두둠칫을 분양 보냈다. 나는 군대에서 건강하길 바라고 두둠칫은 다른 사람 집에서 건강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