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지음
회사에서 장기근속자에 대한 복지로 일주일가량의 리프레시 휴가를 받았다. 당장 일본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본 대륙만큼이나 컸지만 해외여행은 여유가 있을 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가고 싶었기에 멀리서 바라만 봤던 제주도로 행선지를 정했다. 여행 코드가 잘 맞는 나와 친구는 MBTI 극 J답게 음식과 관광지를 고려해 동선을 짜고 변수를 대비한 플랜 B까지 곁들여 3박 4일 간의 촘촘한 여행 스케줄을 만들었다.
화면으로만 보던 제주도 바다의 실물은 바다 애호가인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에메랄드빛 수면과 무해해 보이는 밝고 고운 모래, 방에 들이고 싶은 검은 현무암까지 완벽한 삼위일체를 보여주는 제주도 바다는 아직까지 내게 가장 예쁜 바다로 남아있다. 3박 4일이 턱없이 모자란 시간. 고등어 사시미와 딱새우 사시미, 서울 고양이와는 다른 매력의 제주 고양이들, 해변에서 만난 아기 새우와 소라게, 성산 일출봉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새벽하늘의 별, 우도에서 탄 전기바이크 등 추억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으로 해본 서핑이었다.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다 보니 2022년 버킷리스트에는 “서핑 해보기”, “스노보드 타보기”가 있었기에, 제주도 여행의 메인이벤트를 서핑으로 둘만큼 서핑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다. 여행 둘째 날 월정리 해변에서 나와 친구 그리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분들 네 분과 함께 서핑 강습이 이루어졌다. 강사분들의 코칭 아래 몇 번의 파도를 연습하고 프리 서핑의 시간이 주어졌다. 물을 무서워하는 친구와 달리 평영만큼은 자신 있는 나는 호기롭게 바다의 지평선으로 더욱 나아가 크고 작은 파도들과 몸을 부대끼며 바다를 온전히 느꼈다. 서핑보드 위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햇빛 덕분에 10월의 바다는 그리 춥지 않았다. 타면 탈수록 실력이 느는 게 재밌었다. 스케이트보드처럼 몸에 무게중심을 주어 방향을 틀고 모래사장까지 도착하면 또다시 지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로 들어갔다.
서울에선 컴퓨터로 웹서핑만 하는 내게 서핑은 짜릿한 취향 충족의 시간이었고, 이토록 즐거운 바다 친화적 취미를 계속 이어 나가고 싶어 2023년엔 꼭 양양 서피비치를 가겠노라고 다짐했다. 내 버킷리스트는 앞으로도 꾸준히 업데이트될 전망이다. 다음엔 스노보드, 웨이크보드, 패러글라이딩 등 또 다른 즐거움을 성취해야겠다. 새로운 경험을 위한 지출은 아깝지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