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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Aug 26. 2023

#3. 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챕터1. 어린 날의 설렘과 동경

#3. 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다양하다고 할 만큼 여러 업에 종사해 본 경험은 없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기면 한 번쯤은 꼭 배워보고 싶어 하고, 어느 정도 잘 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 되면 대부분 깊은 애정이 생기곤 했다. 비록 업으로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내가 가졌던 모든 꿈은 모두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도 즐겁지만, 남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었던 마술사가 되고 싶었고,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며 땀 흘리고 보람을 느끼던 합기도 관장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3년간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서와 작가의 꿈을 가졌고, 서점을 운영하고 싶기도 했었다. 카페에서 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커피의 매력에 빠져서 관련 서적을 30권 넘게 읽고, 모르는 것은 N사 포털에 검색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그 지식을 토대로 지식인 커피 분야에서 고수로 활동한 것이 16살~18살 무렵이었다.



  음악이 좋아서 대학교 밴드부에 들었고, 전역 후에는 온라인 유통에 관심이 생겨 쇼핑몰을 창업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는 커피를 더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GCS 바리스타 자격증을 2개 땄고,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해 국립대 농과에 진학했지만, 돈에 대해 깊게 알고 싶어 금융권에 뛰어들었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일을 잘하는 직원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깊었다. 그런 까닭으로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결국 반년 넘게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지만, 병원에 들를 일이 있어 반차를 냈다. 마침 일정도 깔끔하게 조율이 됐고, 병원에 들른 후, 근처 처음 보는 카페에 들러 오랜만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커피가 아닌 카페인을 마셨다.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서는 카페인의 각성작용이 빠르게 내 몸에 작용하게 만들어야 했고, 그 방법은 빠르게 커피를 마시는 것과 플라시보 효과를 맹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뜨거운 커피는 목에 들이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 뜨거운 것을 못 먹는 나에게는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얼죽아’가 되었달까?



  오랜만에 따뜻한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에 집중해 보았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나지만, 아직도 그날 마셨던 커피의 맛이 기억난다. 묵직한 바디감에 베리류에 산미가 살짝 났다.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는 내 취향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집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는 마치 과테말라나 케냐와 같은 원산지 농장에서 갓 수확한 커피를 테스트하는 것처럼, 두어 모금 마시고, 혀를 굴리며 잔향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지만, 하나를 붙잡고 있느라 다른 것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구나.’



결심이 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끝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그렇게 살짝 넋이 나간 상태로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방에서 나왔다.



“쌤, 잠이 안 와요.”



“그래도 자야지. 내일도 활동 많아서 힘들 텐데.”



“원래 조금 불면증이 있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예 못 자겠어요.”



  간혹 이런 친구들이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면 영 잠을 못 자는 친구들. 그래도 이 친구는 양반이었다. 잠이 안 온다고 방에 있는 친구들을 모두 깨워 밤새며 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 상당히 골치 아프다. 자라고 100번을 말해도 어차피 안 잔다. 방음에 잘 안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방에 찾아가 목소리를 낮추라고 언질을 줘야 한다.



“그러면 여기 앉아서 조금 있다 들어가.”



  살짝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당직 근무자 옆에는 의자가 하나 더 놓여있는데, 주로 다친 아이들에게 약을 발라줄 때 앉으라고 하는 의자다.



  나는 순찰과 점검을 제외하면 주로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공부하고는 했는데, 옆에 앉은 아이가 내 화면에 띄워져 있는 꿈에 관한 글을 보더니 눈가에 호기심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쌤은 원래 지도사가 꿈이었어요?”



  참 대답하기 난감했다. 보조 선생님들은 정식 지도사가 아니지만,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학생들이 간혹 잘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주로 타 수련원에서 지원 나와서 잘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간혹 영악한 아이들이 사실을 알고, 행동이 가벼워지는 경우가 있다. ‘아, 그냥 알바구나.’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인솔이나 관리에 허점이 생기고 안전사고로 이어지거나, 시간 지연으로 안 그래도 몸이 두 개가 아니라서 서러워하는 지도사 선생님들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음, 반만 정답이야. 쌤은 꿈이 되게 많거든.”



아이의 반응을 보니 아주 잘 얼버무린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질끈 감고서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살짝 긴장감이 오를 무렵, 잠시 후 나온 목소리는 나를 놀라게 했다.



“쌤, 저는 나중에 사업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게 필요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찾아보니까 사업을 하려면 공부할 게 진짜 많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안 망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니까 아빠는 해보라는데, 엄마가 부정적이어서 설득하려고 시장조사 하면서 사업계획서 쓰고 있어요.”



  깜짝 놀랐다. 이 친구가 고등학교 3학년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 친구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도 짧지만, 사업을 경험했고, 지금도 다시 사업을 준비하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16살에 사업계획서라니. 심지어 듣고 있다 보니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16살에 지식인 활동을 하며, 바리스타 준비나 카페 창업을 준비하던 어른들에게 답변을 하곤 했던 나도 특이하긴 하지만, 이 아이가 자기 꿈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잠깐 사업을 했던 이야기를 해주고,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도움이 될 만한 마케팅적인 부분이나, 정부나 지자체 청년 창업지원금 같은 것을 조금 알려주었다. 국가에서 말하는 청년의 기준 나이는 미달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준비하는 와중에 알아두면 좋을 듯했다. 사실 세금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지만, 나도 공부하는 처지에서 아직 가르칠 수준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나는 이날 이후 종종 살갑게 구는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물어보았다.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아이도 상당히 많았지만, 꿈이 있는 아이들의 대답을 들을수록 나는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어른들은 스스로 행동에 대한 자유와 책임이 생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실이 생각보다 각박하고 차가워서 그런 걸까, 꿈을 묻어두고 사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아이들은 각자가 꿈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중3이 유입과 전환에 대해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간혹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하고 싶은 일이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꿈 타령이냐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또한 시대가 바뀐 것일까? 아이들이 꿈을 대하는 모습은 내가 본 많은 어른보다도 더욱 어른스럽게만 느껴졌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아이는 대학과 자격증 계획을 이미 끝내고, 작년부터 봉사활동 다니며 경험을 쌓고, 국가별 복지 시스템들을 비교하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만의 공예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는 아직 수익은 적지만, 이미 블로그를 통해 자기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건축가를 꿈꾸는 친구는 내가 열심히 듣고 있어서 그랬는지, 갑자기 말문이 터져 고전 양식부터 시작해서 콘크리트와 철근에 관한 이야기까지 쏟아냈다. 그리곤 자신이 나중에 꼭 짓고 싶은 집이 있는데, 어떤 기법을 적용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고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웃는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문득 커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열정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 아이들은 각자가 가진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꿈을 꾸기만 한 걸까? 꿈을 꿨으면 당연히 이룰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아이들에게 꿈을 말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보며 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진리를 깨달았다. 꿈을 꾸는 삶과 이루는 삶이 있다면, 그 누가 후자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챕터1. 어린 날의 설렘과 동경[完]

1-3) 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해당 작품은 아래 링크를 통해 [밀리의 서재 - 밀리 로드]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millieRoad/detail/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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