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출근만 하면 입을 다물었다. 불필요한 말이 불똥이 되어 돌아올까 싶었다. 오전엔 보통 집중이 안 됐다. 오후에 몰아 처리할 일들의 계획을 짜거나 퇴근과 출근 사이 도착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린 메일들에 천천히 답했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간만에 흥미를 끌었다. 간간이 찾아오는 이 손톱만 한 재미 때문에 이 자리에 또 앉아 있었다. 끔찍하게 작은 재미라 무서웠다. 매년 더 작아져서 무서웠다.
상사들과의 대화에선 대체로 쭈그러들었다. 싱긋거리는 표정으로 대답하곤 자리에 돌아와 눈알에 생기를 뺐다. 화장실에 들어앉아 입술로 욕을 난사하고 돌아온 날도 종종이었다. 소리 없이 살기 어린 욕지거리에 변기만 자주 벌벌 떨었을 것이다.
책상은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뺄 수 있도록 항상 깔끔히 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심한 도발 같은 것이었다. 팀장님이 ‘지영씨는 책상이 항상 깨끗하네. 멋지다.’ 칭찬했을 때 노렸던 선제공격에 실패했음을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내 짐을 더 가져오고 싶진 않았다.
이전 회사에선 입사 선물로 화분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구시대적 발상에 작게 몸서리가 쳐졌지만 모여있는 수십 개의 이파리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소용없을 공기정화 고무나무. 제대로 사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 사무실에서 고무나무만 쑥쑥 자라 안쓰러웠다. 눈치 없이 열심히 하는 사람, 그런 거 같았다. 이 고무나무가 햇빛을 알까? 마치 세상모르는 아이처럼 저 따가운 형광등 불빛에도 마냥 좋지 배시시 웃음을 지을까. 웃음 끝에 딸려 나온 안쓰러움이 고무나무를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그때 내 책상에 고무나무보다 소중한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무나무 때문에 퇴사를 했다.
일을 쉰 지 또 두 달 정도 되었다. 변기에겐 빚이 있어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하려 했다. 식탁은 자주 어지러웠으나 며칠은 내버려 뒀다. 창가에 앉은 고무나무는 집이 서향인 탓에 여전히 보기에 애처로운 데가 있었지만 대신 내가 산책을 자주 했다. 오전엔 주로 늦잠을 잤고 오후엔 관성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놈의 먹고살기. 의연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조기 교육이라도 받았더라면 내가 ‘열정’ 같은 단어 앞에 조금은 덜 주눅 들었을까.
때 되면 배고픈 배가 자주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