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혀가 자꾸 어금니에 베어서

#치과

by 지영

이런 날일수록 나는 더욱 사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 진다. 지루하게 하품이나 뻑뻑해대는 그런 일들.

여름날 땀에 쩔은 쉰내 나는 티셔츠를 빨고, 겨울날 언 발을 이불속에 집어넣고 배시시 웃는 그런 일들. 쇼츠를 102개쯤 넘긴 뒤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짜 넣고, 새벽 1시가 다되어 밤 10시부터 고민한 라면 스프를 냄비에 탈탈 터는 그런 일들.

.

.

오늘은 며칠 전부터 욱신대는 어금니 걱정에 치과를 가기로 했다. 7년간의 긴 교정치료는 나를 온갖 치료의 고통엔 익숙하게 했지만 단지 이후 카운터에서 치르게 될 정산만은 여전히 가슴을 떨리게 했다.


욱신대는 어금니를 혀로 쓸어본다. 도톨거리는 감촉.

너의 사이사이를 닦아내려 매일을 그렇게 용을 썼거늘… 밀려오는 옅은 배신감. 그 뒤로 떠오르는 고지혈증의 가족력을 외면한 채 액상과당을 빨아대던 날들. 하지만 달달함이라곤 당최 없는 어제 저녁들의 뉴스가 나의 저녁을 자꾸만 달게 만들었다.


당근에서 추천받은 치과는 크리스피크림 도넛집 위로 위치해 있었다. 반드시 이 치과가 도넛집보다 먼저 이 건물에 들어서 있었어야 하는데... 영화였다면 다음은 치과 원장과 도넛집 점장이 수상히 악수를 하는 흑백 장면이었겠다 같은 상상은 건너편 횡단보도 파란불에 급히 거둬진다.


윙윙거리는 기계소리, 새파랗게 하얀 벽과 바닥, 섬짓한 소독약 냄새. 미리 듬뿍 바르고 온 립밤 덕에 내 입술도 한몫 번쩍거린다.


… 다행히 충치는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의사 하는 말 “힘주어 앙다무는 습관은 이에 좋지 않아요.”

무언가 어저께와 어제와 오늘의 나를 애쓰게 했다. 애쓴다고 달라진 것은 약해진 어금니뿐인데. 악바리와는 거리가 먼 나는 의아함에 고개만 연신 갸웃거리다 진료의자를 내려온다. 양심적인 의사가 나를 곧바로 집으로 보낸다.


근처 카페에 들러 휘핑크림이 올려진 핫초코를 마셨다. 묘하게 저번보다 달아진 음료의 맛이 어금니를 스쳐 목구멍에 가득 찬다. 치료 없이 멀쩡해진 어금니를 혀로 쓸어본다. 도톨거리는 감촉. 오늘 내 하루는 어금니로 가득 찼구나.


꼭 이런 날에만 하루를 사는 일이 도톨거려 신경을 건드린다. 결국 욱신거려야만, 말랑한 혀로 너를 쓸어보아야만 패인 홈 하나하나 덜커턱거리며 기어이 존재한다. 그런 날엔 다 괜찮을 거라고, 여전히 거기 잘 있는지 하루종일 어금니를 훑다가 베인 혀가 퉁퉁 또 붓는 것이다.


그냥 오늘은 이런 얘기나 하고 싶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기 교육의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