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량한 건 어디 망고뿐인가

Chat gpt시대에 ‘창작자’ 로 살아남기

by 유옥





저녁을 마친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개수대에 남은 그릇과 며칠째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깜빡이며 수명이 꺼져 가는 주방등 아래 앉아 망고를 자른다.

높은 당도의 과육을 맛보기 위해 얇은 껍질을 벗기고, 씨를 도려내고, 또 섬세히 칼집 내어 써는 일련의 과정이 일상 속에서는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막상 잘 먹지 않을 것을 알아도, 집 앞 마트에서 떨이로 할인 중이라는 스티커에 마음이 동해서 덜컥 한 박스를 집어온다.

어렸을 적엔 꽤 비싼 몸값 탓에 엄마의 장바구니에서는 보기 힘들었고, 이따금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선 낯선 얼굴의 손에 들려있던 요란한 포장지에 쌓인 과일 바구니 속 두어 개쯤 든 것을 다 함께 나눠 먹던 기억이 난다.


기후 변화인지, 운송 수단의 발달 덕인지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망고가 대형 마트 과일 코너 좌판에 아무렇게나 깔려 미끼 상품으로 내세울 만큼 흔해졌다. 때때로 국산 과일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리는 그 풍경이 난 여전히 낯설다.

한때는 선물로 여길 만큼 귀했던 과일이 식탁 모퉁이에서 익다 못해 물러 터진 꼴을 멍하니 응시하다 괜스레 드는 측은함에 시선을 황급히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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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시된 인공지능 챗 GPT는 이제 몇 마디 명령어로 그럴듯한, 아니 어쩌면 내가 숱한 시간을 모니터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머리를 싸매고 고되게 쥐어 짜낸 것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짜임새 있는 문장을 눈 깜빡할 사이 완성할 수 있는 능력에 이르렀다.


어릴 적, SF영화 속 보던 장면이 곧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질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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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처량한 것이 어디 망고 뿐인가.

마법 주문 같은 몇 개의 단어로 인공지능에게 손쉽게 뭐든 얻어낼 수 있는 요즘 세상에 '글쓰기' 도 비슷한 처지 아닌가.


달콤한 과육을 입에 넣는 찰나의 기쁨은 여전히 남았지만, 과정 속에서 또렷하게 음미할 수 있는 소소한 성취감은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타이핑하며 난잡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일이 줄어들면서 글쓰기는 점점 나의 일부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닌, 보기 좋은 단어의 조합과 반복되는 배열하기에 불과하다.


망고를 손질하는 과정이 귀찮아지듯 , 펜을 들어 소중한 이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조차 이제는 낡고, 촌스러운 불필요한 수고스러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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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난 화면 앞에 앉아 직접 타자를 빠르게 타이핑하는 것조차 비효율적인, 인간대신 인공지능이 글을 생산하는 시대에 산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들은 점점 읽기 쉽고, 감탄을 자아낼 만큼 정교하게 발전한다. 지금껏 인간이 지닌 '유일한 것' 이라 믿어 온 '창조성' 마저 고도화 된 반복 학습을 통해 ai는 우리를 능가하며 자연스럽게 흉내 낸다. 나는 그런 유사함이 때로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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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더는 펜과 종이로 직접 쓰지 않아도, 단 몇 초안에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의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와 편의성 뒤에 가려진, 꾹꾹 눌러 쓴 마음과 고이 접어 담은 정성이라는 의미는 바래져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수를 놓은 듯 촘촘히 이어진 손글씨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진심' 같은 고귀한 가치는 흔들리는 화면 속에 유영하는 잔상에 지나지 않는 글자로는 절대 대체 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었고, 또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귀하게 나눠 먹던 그 망고가 매대에서, 식탁에서, 하잘 없게 나 뒹굴 때 그 가치를 잃듯,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사진을 찍는 것처럼 무엇인가 새롭게 창작하는 행위가 자동화 되어 갈수록 우리는 창조하는 힘을 잃어간다.


점점 나는 창작 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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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고, 무언가를 상상하지 않으며, 이내 창조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인간으로서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할 자격을 내던지고 사유 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로 살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차츰 스스로 할 수 있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상실하며 스스로의 존재마저 잃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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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뜩 익은 망고를 자른다.

예리한 칼날 끝에 맺힌 과즙이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끈적해진 손으로 글을 쓴다.

그 손으로, 마음으로, 영혼을 지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필사적으로 지켜나갈 것이다.


아마 이것은 격하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최후의 발악이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