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무릎, 불완전 구원

사랑과 동정, 그 결핍의 경계에서.

by 유옥


@0k.y00




인간은 나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라, 어쩌면 자신과 닮은 듯한 또 다른 존재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기다리는 것 같다. 오랜 불안과 허무에 시달려 온 나는 이따금 어떤 이들 속으로 마구 헤집고 들어가 자리를 하나 차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너저분하게 늘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새살이 돋도록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까지 단단히 붙여두고 나오는 상상을 한다.


스스로 치유하지 못했던 깊은 결여를, 타인의 아픈 자리를 어루만지며 막연하게 채우는 것이다.


영화 ‘Buffalo 66'


무미건조한 세상 속에서, 내가 당신의 샘이 되면 어떨까.


깊은 공허로 텅 비어린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나는 늘 그런 망상에 휩싸인다.

나의 구원조차 이루지 못했으면서도, 누군가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알 수 없는 고통과 내면의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가는 이를 마주하면, 내 안에서 욕심이 꿈틀 댄다.


‘Buffalo 66'


나는 온전하지 못하다. 내 앞에 놓인 얕은 감정의 골에도 자주 걸려 넘어진다. 종종 내 무릎이 까져 피를 흘리며 울면서도, 뒤따라온 그의 무릎을 걷어 확인하고는 안심한다. 함께 넘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어쩐지 존재의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

그러나 함께하는 것이 언제나 해답은 아니다. 누군가를 돕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알량한 동정과 취약한 우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선보다는 오히려 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pinterst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질문한다. 너는 왜 타인의 고통에 기대어 서 있으려 하느냐고. 왜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보다, 타인을 구원하는 일에 더 매혹되는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빈자리 곁을 서성인다. 그 틈새에서 불완전한 위안을 얻으면서도, 그 위안이 결국 나의 결핍을 더 깊게 파고들고 있음을 안다.


어쩌면 구원은 애초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의 상처에 손을 얹는 순간에 그 고통은 내 몸에 전이되고, 내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끝내, 치유와 파괴 사이에서 흔들린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지켜내고 싶다는 뜨거운 충동과, 그 마음이 실은 자기 연민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자각 사이에서.


©pinterst


그러나 동시에 안다. 이 불안정한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임을. 완전하지 못한 존재가 서로의 결여를 더듬으며 잠시 머물다 가는 것. 우리는 누구도 온전히 구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꿈꾸는 바로 그 순간에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pinterst


나는 오늘도 망상과 결핍을 끌어안은 채, 타인의 무릎과 내 무릎을 함께 어루만진다. 그것이 사랑이든 동정이든, 혹은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무는 애매한 감정이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도 나와 당신이 함께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