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4월

사랑은 닳은 입술로, 다시 세상을 말하는 일

by 유옥





도대체 알 수 없다.


나는 왜 늘 반짝이는 것보다 조금은 낡고, 다소 허술한 것들에 마음이 이끌리는지. 어쩌면 나는, 한때 빛났던 것들이 이제는 어떻게 빛을 잃어가는지를 지켜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pinterst


그의 입을 본다. 그 입술에서, 그가 지나온 시간의 온도와 무게가 느껴졌다.


무심히 커피를 마시며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 입술.


군데군데 희끗한 수염이 덮인 그 입가를 바라보다 보면, 나는 그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말들과 삼켜야 했던 문장들, 밤늦게 홀로 마셨을 술과 오래된 연인과의 작별 인사,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섞인 냄새를 맡는 듯했다.


©pinterst


그의 입술은 세월에 닿은 나무결처럼 거칠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부드러운 숨결이 남아 있었다.

현실에 닳아버린 어른의 얼굴 뒤편에서 나는 문득,

꿈을 이야기하던 소년의 표정을 보았다.


©pinterst


그가 옛날 이야기를 꺼낼 때면, 눈동자 안쪽이 미세하게 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그를 향해 하염없이 기운다.

그는 세상에 지쳐버린 노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여전히 꿈을 믿고 싶어하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노인의 그림자 밖으로 그 소년이 잠시 얼굴을 내밀 때마다 내 가슴은 설명할 수 없는 떨림으로 저려온다.


사랑은 어쩌면 그런 것일까.


서로의 가장 빛났던 시절이 아니라, 이제는 닳고 바래버린 조각들을 마주 보며 그 안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를 발견하는 일.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며 웃을 때, 나는 그가 다시 누군가를 믿어보려는 순간을 본다.

그가 말끝을 맺을 때마다, 그 안에서 세상의 냉기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아주 조용한 숨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 숨을 따라 조심스레 그에게 닿는다.


그의 입술은 나에게 짙은 시간의 증거였다.

그가 지나온 세월, 견뎌온 침묵,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꿈의 잔향이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입술을 바라보며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봄까지도 사랑했다.


©pinterst


소년과 소녀는 결국 그렇게 만난다. 한쪽은 세월을 건너와 피로에 젖은 어른으로, 다른 한쪽은 아직 세상을 다 배우지 못한 채 서툴게 사랑을 배우는 사람으로.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떨림이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믿고 싶은 어떤 온기.


©pinterst


나는 여전히 그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그를 떠올릴 때면, 나는 그의 입이 먼저 떠오른다.


그가 지나온 인생의 굴곡을, 그가 사랑하고 미워했던 이름들을.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보다, 말이 되지 못한 숨과 공기들을.


무언가를 잃고도 여전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의 입,

그곳에서 나는 오래된 꿈의 잔해와 옅게 피어나는 희망을 본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