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

꼬리뼈와 혐오감의 상관관계

by 유옥


©0k.y00




경솔하고 비릿한 시선을 아무 데나 내던지는 나의 눈을 저주한다.


누군가를 스치듯 바라볼 때조차 눈동자 안쪽에 서늘한 금속이 박혀 있는 것처럼 반짝이며 튀어나가는 잔혹함.


입안에서는 다물 줄 모르는 혀가 살랑대며, 감정보다 앞서 튀어나오는 단어들은 늘 나보다 빠르게 나를 배반한다. 나는 가끔 그 혀를 붙잡아 질끈 묶어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모든 일에 달관한 척, 얼굴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웃어 보일 때조차 목구멍 깊은 곳에서는 오래 상한 감정이 끓고 있다. 사람 좋은 얼굴로 내비치는 그 얄팍한 평정 속에서 나는 아주 고요하게 누군가를 미워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내 안의 어딘가에서 무언가 썩어가는 냄새를 알고 있다. 그건 나만이 맡을 수 있는 내부의 곰팡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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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어둡거나 더 비루해 보이는 이를 보며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 그 표정의 근원을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다. 움츠린 사람 앞에서만 기세 좋게 펴지는 어깨 역시 마찬가지다. 반사적으로 기울어진 근육의 미세한 반응들— 아주 작은 승리의 흉내를 내는 그 찰나들은 내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한 존재임을 들추어낸다.

나는 나를 변호할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채, 그 잔인함을 들킨 사람처럼 잠시 얼어붙는다.


선 긋고 경계 긋는 손가락은 더 노골적이다. 마치 타인과 나 사이에 생존을 위한 거리를 측량하는 자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나는 점점 묻게 된다. 정말 그 거리가 나를 지켜주는가 혹은 오히려 나를 고립시키고, 그 고립 속에서 더 깊은 속내를 썩히고 있는가.


입으로는 모든 존재가 귀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누군가의 몰락을 조용히 바란 적 있다. 그 감정은 말 그대로 ‘더럽다’. 타인의 파멸을 상상하며 잠시 위안을 얻는 인간의 욕망. 그것이 내 탐욕인지 아니면 진화의 잔재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욕망이 내 안에서 낡은 기름처럼 끈적이며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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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밀려올 때마다 입안이 매워진다. 금속성과 피맛이 뒤섞인 그 매운맛은 혐오가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결국 내 살을 씹어 삼키는 행위라는 걸 깨닫게 한다.


사랑만 적으며 살겠노라 다짐했던 내가, 그 다짐과 가장 먼 자리에서 오래 머물러왔음을 자각할 때면 온몸이 뒤틀린다. 역겨움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 짙어지기에 나는 오히려 그 속물스러운 감정을 인정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인정하는 일이 부정하는 일보다 덜 비참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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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아주 오래전에는 꼬리가 있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혹은 공포를 감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기관.


그 사실을 떠올리며 엉덩이 시작점의 단단한 뼈마디를 더듬는다. 만약 혐오라는 감정이 과거 인류에게 달려있던 꼬리처럼 ‘위협을 감지하기 위한 원초적 장치’였다면, 우리는 왜 아직 그것을 떨구지 못한 걸까.


살아남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살아내는’ 시대에 도달했음에도 혐오는 여전히 끈질기다. 자기혐오와 타자혐오를 교차시키며,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서툴고 덜 길들여진 존재인지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늘 의심스럽다. 정말 쓸모가 있어 남은 걸까. 아니면 아직 덜 진화해서 버리지 못한 감정일 뿐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혐오는 우리 안에서 가장 늦게 길들여지는 본능이며 가장 천천히 퇴화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그 혐오와 부딪히고, 그것을 미워하고, 다시 미워한 나를 미워하며 하루를 산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혐오를 버리고 싶어 하는 건 그 감정이 잔혹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을 침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


내 안의 어둠을, 그 어둠을 밀어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욕망을, 그리고 그 두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라는 존재를.


아직은 완전히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알고 있다. 언젠가 이 감정들이 퇴적층처럼 가라앉아 나를 조금은 덜 부식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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