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주기를 지나며...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그저 울고만 계시나이까 .
영화 사바하의 마지막 장면에 흘러 나오는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문장이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터져나온 인간의 절규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신을 향한 원망이라기보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무력한 외침에 가까웠다.
이태원의 그 밤 이후, 우리 모두는 같은 질문을 품었다.
‘왜 그들이었는가’
그 짧은 의문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세상의 복잡한 부조리를 전부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엔 끝내 답이 없다.
비극에는 이유가 없고,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느 지점에서 무너져 내린다. 남는 건 침묵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묻고, 다시 고개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이 애도하는 인간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그것들은 늘 한밤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조용히 부순다. 그러나 슬픔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또 다른 손길이 있었다.
국화꽃을 들고, 초를 손에 쥔 채로.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이들이 차가운 길목에 모여 함께 울었다. 누군가는 휴지를 건넸고, 누군가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비극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걷게 만든다는 사실을.
애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행위다. 누군가의 상실을 ‘그들만의 일’로 두지 않고,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 그 공감의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온기다.
이태원의 골목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같은 공기를 마셨고, 같은 음악을 들었으며, 같은 시간을 살았다. 그 시간 안에 머물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다르지만, 그날의 공기는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 안에서 미처 내뱉지 못한 호흡처럼 남아 있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눈을 감는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는 건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떠올리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생을 잠시라도 우리 안에 다시 머물도록 허락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애도다.
우리는 종종 슬픔 앞에서 작아진다. 하지만 그 작아진 마음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자란다. 그 사랑이 바로, 세상이 무너져도 인간이 끝내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연민이 우리를 다시 세울 거라고.
누군가의 눈물이 낯선 이의 품에서 닦여지고,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이의 손끝에서 온기로 변해갈 거라고.
비극은 인간을 시험하지만, 애도는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만든다.
이제 우리는 함께 우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울음은 단지 슬픔의 표시가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언어다. 누군가의 고통을 내 안에서 느끼는 일, 그 감정이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그날의 영혼들이 평안하기를.
남은 이들의 밤이 덜 아프기를.
그리고 우리가 이 무너진 세상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향해 다정하게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