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용서를!

단감을 깎다가 떠올린 단상

by 유옥





가을을 글로 써보려 하니, 어제만 해도 초가을 같던 날씨가 오늘은 벌써 겨울에 성큼 다가서 있다. 계절은 언제나 너무나도 매정해서, 잠시 눈을 돌리는 사이 모습을 바꾸어 떠나버리고는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아쉬움에 매달릴 틈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정해진 길을 걸어갈 뿐이다.


©pinterst


서늘한 아침, 부스스 눈을 떠 한 손에 과도를 들고 단감을 손에 올려본다. 이 매끄럽고 둥글둥글한 것을 베어야만 비로소 그 속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니, 어디서부터 칼을 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어 멍하니 쳐다본다.


결국 ‘단감 예쁘게 깎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칼을 쥐는 손이 여전히 서툴기만 한 내 모습과 달리, 화면 속 그녀는 손쉽게 껍질을 얇게 벗겨내고 단감의 속살만 남긴다. 손놀림을 따라 흉내를 내보려다 보니, 이윽고 연한 주황빛 과육이 드러났다.

어설프게 깎인 과일 조각들은 곳곳이 두껍게 패였지만, 아끼는 그릇에 담아내니 그 나름대로 소박하게 빛이 난다. 맛은 물론 좋다. 아마도 영상 속 그녀도 능숙하게 과일을 손질할 수 있기까지 수많은 울퉁불퉁한 과일을 씹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서툰 단감도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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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나는 나의 미숙함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름날 푸른 감을 베어 물고 떫다며 뱉어내는 미련한 실수보다는, 때가 되면 익어갈 것을 알기에 기다리는 여유와 지혜를 품고 싶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그 열매를 정직하게 거두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도 내가 뿌린 만큼을 성실하게 거둘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과한 기대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걸어가며 단단히 내 발자취를 남기는 삶을 살고 싶다.


손수 깎아낸 가을의 단맛을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문득 열어둔 창가로 시선이 머문다. 창 너머의 하늘은 수채화로 투명하게 물든 듯, 살짝 드리운 햇살과 가벼운 바람이 은은히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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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을이다. 여름 내내 더위에 치이며 지친 마음이 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여유를 찾는다.

겨울은 그 매서운 추위 때문에 다시 움츠릴 테니, 지금 이 계절만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 순간도 드물 것이다.


그러니 가을에는 남은 미움을 지우고, 오래 묵힌 용서를 꺼내보자. 잘 익은 마음 한 조각을 입에 올려, 달콤하게 스며들고 남은 그 사랑을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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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르익어가는 이 계절에, 어느새 굳어버린 마음도 천천히 느슨해지도록 내버려 두자.

살랑거리는 바람에 말랑말랑해진 내 마음이 잠시나마 녹아내려도, 그건 온전히 가을의 탓이라 둘러대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니까.




글, 편집 | 유옥(瑜)​
@0k.Y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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