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2025년 크리스마스 이브, 산타봉사 함께 할까요?

by 유옥






살아가다 보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대개 외부의 사건보다 ‘내가 어디쯤 서 있는가’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우리는 더 큰 자리를 욕망하기도 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역할을 억지로 떠안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과 그릇의 크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삶이 단순해진다.


직접 찍은 ‘동심이 지켜지는 순간’


너무 욕심내지 않고, 그렇다고 체념하지도 않은 채 내 자리를 알아보고 그 자리를 조금씩 깊게 파고들어 가는 것. 그 단순한 태도가 결국 만족을 낳고, 만족이 천천히 행복의 몸집을 키운다.



나 역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불안 사이에서 오래도록 흔들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하다 여겨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오히려 그 순간이 내 삶의 중심을 바로 세워주는 경험이었다. 비워진 마음에는 조급함 대신 숨이 들어차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는 다정한 여지가 생겼다.


삶은 생각보다 담백했고, 행복은 거창한 성취보다 내가 제자리에 서 있다는 감각에서 더 자주 찾아왔다.



세상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은 결국 ‘제자리를 떠났을 때’ 생긴다. 한 기업의 대표가 자신의 위치가 가진 무게를 망각하고 손쉬운 부정에 흔들릴 때, 공공의 신뢰를 지켜야 할 사람이 사익을 좇을 때, 그의 선택은 다른 누군가의 자리까지 뒤흔들어 버린다.


한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면 그 파동은 꼭 주변의 누군가에게 흘러가 손해와 상처를 남긴다.역할이 무게를 갖는 이유는 그 자리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창완 밴드의 곡


존경하는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 속 가사는 말한다. 어린 존재는 아이로서 웃고 울고 뛰노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그 아이의 세계를 지켜주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사회의 톱니들은 걸리는 소리 없이 돌아간다.


‘사랑의 몰래산타’ 공식계정/ 참가신청링크


그래서 올해 연말, 나는 잠시 산타가 되기로 했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봉사인데, 단순한 선행 이상의 의미가 내게 있다.


종종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는 말이 선행의 법칙처럼 들리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선한 행동이 드러남으로써 누군가가 용기를 얻고,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움트는 것 역시 세상을 더 밝게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


©pinterst


어쩌면 선행도 전염될 수 있고, 그 전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힘을 지녔다. 누군가의 작은 결심 하나가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열고, 그렇게 번져나가는 착한 영향력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그 아이들이 잠시라도 세상의 고단함을 모른 척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가난이나 개개인이 지나고 있는 집안사정의 무게가 아니라, 오로지 아이다운 해맑음만으로 채워지는 하루.


어른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자기 나이만큼의 시간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거창한 자격보다 한 사람의 진심이 더 큰 힘을 가진다.


©pinterst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작더라도, 그 작은 몫이 어떤 아이의 하루를 밝힌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 다른 자리를 타고난다. 그 자리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출발점이다.


자리를 지키는 어른과, 그 자리를 믿고 마음껏 자라는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 사회는 온전한 균형을 회복한다.


©pinterst


그리고 그 균형 속에서야 비로소 ‘행복’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은 의미로 자리 잡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저 제자리에 온전히 서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도착할 뿐이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