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크리스마스 이브, 산타봉사 함께 할까요?
살아가다 보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대개 외부의 사건보다 ‘내가 어디쯤 서 있는가’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우리는 더 큰 자리를 욕망하기도 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역할을 억지로 떠안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과 그릇의 크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삶이 단순해진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그렇다고 체념하지도 않은 채 내 자리를 알아보고 그 자리를 조금씩 깊게 파고들어 가는 것. 그 단순한 태도가 결국 만족을 낳고, 만족이 천천히 행복의 몸집을 키운다.
나 역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불안 사이에서 오래도록 흔들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하다 여겨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오히려 그 순간이 내 삶의 중심을 바로 세워주는 경험이었다. 비워진 마음에는 조급함 대신 숨이 들어차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는 다정한 여지가 생겼다.
삶은 생각보다 담백했고, 행복은 거창한 성취보다 내가 제자리에 서 있다는 감각에서 더 자주 찾아왔다.
세상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은 결국 ‘제자리를 떠났을 때’ 생긴다. 한 기업의 대표가 자신의 위치가 가진 무게를 망각하고 손쉬운 부정에 흔들릴 때, 공공의 신뢰를 지켜야 할 사람이 사익을 좇을 때, 그의 선택은 다른 누군가의 자리까지 뒤흔들어 버린다.
한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면 그 파동은 꼭 주변의 누군가에게 흘러가 손해와 상처를 남긴다.역할이 무게를 갖는 이유는 그 자리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 속 가사는 말한다. 어린 존재는 아이로서 웃고 울고 뛰노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그 아이의 세계를 지켜주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사회의 톱니들은 걸리는 소리 없이 돌아간다.
그래서 올해 연말, 나는 잠시 산타가 되기로 했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봉사인데, 단순한 선행 이상의 의미가 내게 있다.
종종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는 말이 선행의 법칙처럼 들리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선한 행동이 드러남으로써 누군가가 용기를 얻고,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움트는 것 역시 세상을 더 밝게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선행도 전염될 수 있고, 그 전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힘을 지녔다. 누군가의 작은 결심 하나가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열고, 그렇게 번져나가는 착한 영향력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그 아이들이 잠시라도 세상의 고단함을 모른 척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가난이나 개개인이 지나고 있는 집안사정의 무게가 아니라, 오로지 아이다운 해맑음만으로 채워지는 하루.
어른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자기 나이만큼의 시간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거창한 자격보다 한 사람의 진심이 더 큰 힘을 가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작더라도, 그 작은 몫이 어떤 아이의 하루를 밝힌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 다른 자리를 타고난다. 그 자리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출발점이다.
자리를 지키는 어른과, 그 자리를 믿고 마음껏 자라는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 사회는 온전한 균형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 균형 속에서야 비로소 ‘행복’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은 의미로 자리 잡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저 제자리에 온전히 서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도착할 뿐이다.
글, 편집 | 유옥(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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