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이동진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을 위하여’ 중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떠나는 당신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나는 짐작 할 수가 없다.
가련한 사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어쩌면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아픈 기억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지어낸 말이 아닐까.
모든 이별이 그러 하겠지만, 내게는 아직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것 이다. 당신이 떠난 후에도 세상의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몇 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정신이 조금씩 든다. 당신을 향했던 원망은, 지나고 나니 내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많은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후회한다. 이따금씩 괜찮아지기도, 자책하며 많이 울기도 한다. 때로는 당신이 많이 그립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게 주어진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나는 언제쯤 당신을 보내는 길에 이왕 떠나는 거라면 안녕히 잘 가라고 담백하게 인사해 줄 수 있을까. 그저 같은 시간 속에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워서 짓는 눈물이니 혹, 속상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도망친 끝에 다다른 그곳에는 부디 한 줌의 행복이 있기를. 항상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자주 웃으며 행복하기를.
2021.01.21.
나의 소중한 친구,
T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