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가 익어가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을까?
그가 좋아하던 회도 소주도 이제는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여름이면 한 상자씩 사다 두고 소금에만 찍어 먹던 토마토도 그렇다. 익히지 않은 것은 삼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뒤로, 냉장고 안의 붉은 것들은 모두 조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나는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는다. 습관처럼 안을 들여다보다가 주스 한 병을 꺼낸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붉은 액체가 잠겨 있다. 빛을 받아 천천히 흔들리는 그 색이 유난히 깊다. 잘 익은 과육을 갈아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붉음이 낯설다. 손에 쥔 채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막 도려낸 과육처럼 서늘하면서도 미묘한 온기가 도는 색이다.
병 표면에는 리얼 생과일이라는 문구가 또렷하다. 살아 있다는 뜻의 글자 앞에서 잠시 멈춘다. 생이라는 말이 어쩐지 위태롭게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조건이 많은 일이었나 싶다.
토마토의 붉음은 늘 여름 한가운데 있었다. 더운 바람이 베란다를 밀고 들어오던 오후, 작은 접시에 소금을 덜어 두고 반으로 가른 토마토를 입에 넣던 사람. 씨가 흘러내리기 전에 와락 베어 물던 그 얼굴. 그 장면은 계절처럼 당연히 되풀이될 줄 알았다. 여름이 오면 토마토가 있고, 토마토가 있으면 아버지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주스병을 다시 냉장고에 넣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스친다. 올여름이 와도 우리는 그 여름을 함께 먹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 상자째 쌓인 토마토가 있어도 그의 식탁에는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계절은 준비 없이 다가오는데, 나는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처럼 서 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숫자가 빼곡한 처방전을 접어 가방에 넣을 때마다 나는 조금 작아진다. 국의 간을 몇 번이나 고치다가 결국 맛을 잃어버리는 저녁에도 그렇다. 조심스레 썰어 둔 과일을 앞에 두고도 손을 거두는 아버지를 보면, 나는 내가 너무 늦게 철든 딸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덜 고생시킬 걸.
조금만 더 빨리 어른이 될 걸.
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서툴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안에서 몇 번이고 맴돌다 사라진다. 대신 오늘 뉴스 이야기나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 이야기를 꺼내며 공백을 메운다. 몸은 어느새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데, 마음 한쪽은 아직도 아이처럼 서성인다.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이 많다. 내 이름이 찍힌 책을 건네는 순간, 내가 선택한 삶을 설명하는 자리, 어쩌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날. 그 장면 어딘가에 아버지가 서 있을 거라 믿어 왔다. 믿음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를 영원히 가진 사람처럼 군다.
내일이 또 올 것처럼 말을 아낀다. 식탁 위에는 흰 죽이 놓이고, 컵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다. 토마토 대신 작은 접시에 선홍빛 알약이 가지런하다. 그 자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마트에 가면 토마토는 여전히 단단하고 붉다. 상자 안에서도 제 속도로 익어 간다. 나는 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끝내 손을 뻗지 못한다. 여름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겁이 난다. 계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오는데, 우리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시간은 늘 앞서 걷고 우리는 뒤따라 걷는다. 따라잡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전해야 할 말이 있다. 입 안에서만 맴돌던 그 한마디를 이번에는 삼키지 않으려고 한다.
토마토가 다시 상자째 쌓이고, 베란다로 더운 바람이 밀려들 때 그 자리에 당신이 앉아 있기를 바란다고.
그 말을, 아직은 말할 수 있을 때.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