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팀장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고 매일 다짐한다).
오늘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 사람 얼굴부터 보인다.
‘아, 씨 진짜. 하필 아침부터 박팀장이라니.’
문이 닫히기도 전에 그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묻는다. “어? 오늘 생얼이야?”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우리 땐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에선 티 못 냈다?”
웃으면서 하는 말인데, 이상하게 어깨가 조금 굳는다. 나는 괜히 주머니 속 혈색이 돋아보이게 한다는 립밤을 꺼내 한번 더 쓱 바른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커피를 들고 서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한 문장쯤 완성해둔다.
‘저 인간은 왜 저럴까.’
말끝마다 사람을 시험하듯 툭 던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지적을 굳이 골라서 하는 재주.
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텁텁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을 몇 번이고 마주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왜 하필 저 사람일까.
세상에 좋은 사람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늘 적당히 거슬리는 사람을 한 명씩 배치해 둔다. 마치 일부러 내 성질을 시험해보려는 것처럼.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방어 태세를 취한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저 사람 말 따위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가장 많이 자란 순간은 꼭 그런 사람들 옆에서였다. 상냥한 사람 곁에서는 편안해졌고, 까칠한 사람 곁에서는 나의 날 선 부분을 보았다.
불교에서는 모든 만남을 인연이라 부른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어딘가에서 이미 이어져 온 실타래라고.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지만, 가끔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나를 조금 덜 괴롭게 만든다.
미움이 올라오는 순간, 잠깐만 방향을 틀어보는 것이다. 그가 틀렸다는 증거를 찾는 대신, 이 불편함이 나에게 보여주는 얼굴을 살피는 쪽으로.
이를테면 박팀장은 내게 이런 걸 가르친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저렇게 쉽게 잘라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나는 후배가 말할 때 핸드폰을 보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 나는 누군가를 작아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권위를 쓰고 싶지 않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내 삶의 기준이 된다. 그는 반면교사라는 이름으로,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운 마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속은 부글거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혼자 궁시렁거리기도 한다. 나는 아직 수행자도, 성인도 아니니까.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움이 올라오는 그 찰나에 이렇게 한 번쯤 상대가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 되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질문을 바꾸면 감정의 결도 조금 달라진다. 상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한 발짝 물러나기 때문이다. 미움 한가운데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 떨어지면 윤곽을 드러낸다.
그 사람의 불안, 조급함, 인정받고 싶은 마음. 어쩌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흔들림.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 교과서적이다. 나도 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배울 점이 있다기보다,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하나씩 붙어 있다고. 어떤 거울은 맑고, 어떤 거울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지만, 어쨌든 그 앞에 서면 나는 나를 본다.
내일도 아마 엘리베이터에서 박팀장을 또 마주칠 것이다. 또 몇 층을 정적 속 숫자판만 노려보다 오를 것이고, 나는 또 괜히 멋쩍은 얼굴로 립밤을 덧바를지도 모른다.
그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나를 시험하려는 마음도 없을지 모른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말하고, 자기 세대의 언어로 세상을 재단할 뿐.
사람은 참 이상하다. 미운 사람 덕분에, 오히려 자꾸만 내가 되고 싶은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로 인연이라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하는 순간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 편집 | ©유옥(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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