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타는 법

차라리 줄과 하나가 되자

by 작가미상


30층 아파트 옥상에 외줄을 걸고 저편으로 건너려 한다. 눈앞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아득하다. 저 맞은편 아파트가 내 발끝까지 닿을지는 알 수 없고, 똑같은 높이에 똑같은 구조일지라도 그 끝에는 분명 뜻밖의 무언가가 기다릴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기대가 마음을 자꾸 흔든다. 확신 없는 가능성이 주는 환상은 때로 사람의 발목을 묶어두는 법이다.


가는 게 맞을까, 발을 떼기 전까지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등을 떠미는 미지의 기척과, 발아래 가시밭처럼 펼쳐진 바닥을 보니 도망칠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외줄에 첫발을 올리는 순간,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생존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삶이란 언제나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서야 비로소 다음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법이니까.


외줄은 하나뿐, 발 디딜 자리는 기껏해야 두 뼘 남짓이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 온몸이 요동치는데, 문득 내 몸짓이 너무 요란해 이 가녀린 줄마저 닳아버릴까 걱정이 앞선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지금 딛고 있는 이 현실이 단단한지 멈춰 서서 확인하는 것이 먼저일 때가 있다. 불안한 줄 위에서 우리는 늘 그런 확인을 갈구한다.


발끝 아래로는 누군가의 비명과 환호가 뒤섞인 바람이 날카롭게 스며든다. 마치 거친 칼날처럼 다리부터 온몸을 타고 들어온다. 흔들리지 마라. 겁먹지 마라. 그런 말들이 귓가에 맴돌지만, 그 바람이 나를 덮치면 덮칠수록 깨닫는다. 나를 밀어내려는 바람과 맞서기보다, 차라리 줄과 하나가 되어 함께 흔들리는 쪽을 택해야 한다고. 마치 익숙한 매운맛을 삼키듯, 거친 바람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줄 위에 선다는 건 단순히 균형을 잡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미지의 세상에 나를 던져두고, 나의 의지와 신념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다.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한다. 발끝과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은 세상이 내게 던지는 질문 같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허공에 머물 테니까.


바람과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놀랍게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이 고요함과 소란 사이를 오가는 것은 분명 하나의 예술이다. 저 끝을 향한 갈망과 시작의 두려움이 맞물려도, 이제 중심을 잡는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 나는 줄 위에 묵묵히 머문다.


그리고 문득, 줄 끝 너머의 낯선 아파트가 더 이상 나를 이끄는 목적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곳은 그저 나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의 무대일 뿐, 진짜 도전은 이 외줄 위에서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삶이란 끝없이 이어지는 외줄 위에서, 쓴맛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나이쯤 되면, 가시 박힌 줄 위에서도 웃을 수 있게 되는, 그런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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