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삼키고 달면 뱉을래요.

가시도 말하더라, 자기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by 작가미상


매운 말을 삼켰나 보다. 속이 괜히 쓰린 걸 보니 말이다.


주변에는 꼭 한 명쯤 말을 박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직설적이거나, 굳이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싶은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쟨 말에 날이 서 있어.” 마치 말을 칼처럼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가만 보면, 꼭 날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에 박힌 가시 같은 감정들을 꺼내보려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말의 결이 다른 건, 사실 각자 다른 생선을 먹어온 탓일 테니까.


물론 대부분은 그냥 삼킨다. 밥을 꾹꾹 씹다 보면 언젠가는 가시도 같이 넘어가겠거니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내려오던 민간요법에 불과하다.


가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야지.”

이익에 따라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하라는 조언이다. 자기 입장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 그게 결국 그 순간을 견디기 위한 생존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더 자극적인 고통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시를 빼내려 애쓰던 사람이 결국 말을 꺼냈을 때, 그건 고스란히 누군가의 목에 박히게 되니까. 삼켜보지 않은 탓이다. 자꾸 뱉기만 하다 보면 말도 감정도 익숙해지지 않고, 낯설고, 날카롭고, 결국엔 더욱 위험해진다.


한 번 튕겨 나온 말은 다른 감정들을 데리고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벤치 클리어링처럼 감정의 충돌이 벌어진다. 어느새 나도 거기에 질 수 없다는 듯, “거기에 질소랴” 하며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는다. 이익에 반하더라도, 마주해야 할 필연적인 상황들은 결국 삼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억지로라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떫은 아픔이 빵이라면 달고, 쌀이라면 고소하게 느껴지는 날이 온다.


그리고 이제 이 나이쯤 되면, 쓴맛도 좀 즐길 줄 아는 입맛쯤은 생긴 것 같다. 한 번쯤은 쓴 걸 좋아해도 되는 시기. 어쩌면 그런 게 어른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시도 말하더라. 자기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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