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술 취향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정의한다.
이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웃는다. 네가? 라는 반응이다. 안 좋아하는 사람 치고는 너무 잘 마시지 않느냐면서. 나는 내가 술을 잘 마시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못 마시는 게 아닌 건 확실한 것 같다.) 중요한 건 나의 주량과 선호는 명백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알코올이 주는 기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술이 불러오는 소소한 에피소드들, 술자리가 가져다 주는 느슨하고도 즐거운 분위기는 좋아하는 편이다. 긴장이 풀린 사람들이 더욱 편안한 자세로 기대 앉아 필터링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 그런 분위기에 나도 가담해서 취한 사람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일 같은 것. 그러나 나는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그들처럼 풀어지는 게 힘들다.
오히려 술을 마시면 긴장하는 편이다. 아니, 긴장하는 나를 더욱 명징하게 의식한다고나 해야할까. 정신이 풀어지는 것을 의식한 나의 일부분이 더욱 또렷하게 깨어나는 것이다. 정신 차려! 하고 외치면서. 유감스럽게도 그 일부분은 놀랍도록 이성적이어서 내게 자꾸만 현실감각을 일깨워준다. 취해서 몽롱해진 와중에도 귀에서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것이다. ‘그런 말 하면 후회할거야. 그런 행동 하지말고 집에나 가. 지금은 기분이 좋아져서 뭐든 잘 될 것 같지만 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취해서 기분이 좋은 순간은 길지 않다. 술집을 나서자마자 취기가 점차 가시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았던 현실의 고민이나 우울했던 감정들이. 나는 이윽고 깨닫는다. 내가 영원히 술에 취해 있지 않는 이상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그 간극에서 오는 슬픔은 숙취보다 괴롭다는 것을.
그래서 해결책이 있느냐고?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것. 실은 나는 누군가와 마시게 될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집에서 맥주를 마실 바엔 탄산음료를 더욱 선호한다. 두 번째는 갈 데 까지 가는 거다. 아예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기. 그러면 간극도 느껴지지 않고, 긴장도 완전히 풀리고 만다. 사실 내가 우울한 시기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자꾸만 현실감각이 일깨워지고, 알코올 때문에 격해지는 감정이 눈물로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법이다. 중요한 건 이런 방식으로는 감정이 해소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선호하는 것은 가볍게 마시는 것이다. 칵테일 한 잔, 맥주 한 잔, 그 정도로. 특히 나는 요즘 하이볼에 빠져 있다. 집에 있다가도 술 생각이 나는 경우는 잘 없는데, 가끔 하이볼이 너무도 마시고 싶은 순간이 종종 올 정도이다. 특히나 얼마전에 먹은 얼그레이 하이볼은 정말 맛있었는데.
언젠가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주종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는 하이볼과 한라산을 동시에 떠올렸다. 하이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달달한 술이고, 한라산은 단 맛이 약한 높은 도수의 소주이다. 하이볼 한 잔은 내게 가벼운 취기를 선사할 것이고, 한라산은 나를 골로 보내겠지. 이처럼 극단적인 술 취향을 가진 나는 여전히 애매하게 취한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술은 만취하려고 먹는 것. 그렇게 마실 게 아니라면 차라리 알콜이 함유된 음료를 마실 것. 이렇게 쓰면 내가 조금 무서운 사람 같을까?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어떤 술에도 취하지 않는 또렷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