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돌아갈 무렵에는 우산이 필요하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
대학교 1학년 때 다분히 낭만적인 교양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의 주제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나기라고 적었다. 습한 여름날, 미처 대비하지 못할 정도로 예고도 없이 퍼붓는 소나기. 거기에 손쓸 수 없이 흠뻑 젖어버리는 일. 그때 내게 사랑은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에 그 정의가 바뀌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애인을 지하철역으로 바래다주는데 갑자기 비가 온 날이었다. 나는 우산이 없는 그에게 가방에 챙겨 온 여분의 우산을 건네주었다. 그러는데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우리 집 현관 우산꽂이에 꽂힌 서너 개의 편의점 비닐우산들이. 예상치 못한 비가 왔을 때 그가 내게 사준 우산들이다. 그의 집 현관에도 곧 젖은 내 우산이 놓이겠지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비를 맞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다정한가. 황정은 작가는 그래서 ‘디디의 우산’ 같은 소설을 생각하게 된 걸까.
어쩌면 상투적인 로맨스 장면이다. 연인이 함께 쓴 우산 한쪽이 자꾸만 기울어서 누군가의 어깨가 전부 젖어버리는 장면이라거나, 썸을 타는 상대에게 우산을 빌려준다거나, 함께 쓰고 가면서 서로의 어깨가 밀착되는 설레는 상황이 연출된다거나. 나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도 쏟아지는 비가 그 장면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산이었던 것이다. 사랑은 맹렬한 소나기가 아니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소박하고도 소중한 마음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다정함이었다. 내가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고, 너를 험한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어 한다는 의미를 지닌.
얼마 전 비가 내리던 아침, 초등학교 앞에서 엄마와 딸을 보았다. 엄마는 큰 우산을 펼쳐 들고 있었고 아이는 어린이용 우산을 든 채 엄마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는 작은 우산을 펼치며 엄마의 우산 아래에서 걸어 나왔다. 엄마는 아이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사랑은 우산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