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즐기는 취향에 관하여
지인 세 명에게 취향을 오픈했다가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을 얻어냈다. 내 취향은 원래도 조금 마이너 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공포물을 좋아하는 것은 조금 예상 외인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내가 조용하고 순한(?) 인상이고 성격도 그런 터라 평소에도 차분하고 아름다운 영화나 책을 즐길 것 같았나 보다. 물론 나는 아름다운 예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꼭 예쁘고 향기로운 꽃들이 심긴 꽃밭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때로 아름다움은 잔뜩 짓밟히고 피로 낭자한 꽃밭(이라고 불렸지만 더는 그렇게 불릴 수 없는 것)에서도 올 수 있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공포물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나에게는 그중에서도 공포영화를 바라보는 나름의 분류 기준이 있다. 물론 통용되는 체계를 베이스로 하되 내 입맛대로 조금 바꾼 기준이다. 일단 서양 공포냐, 동양 공포냐가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참고로 나는 동양 공포 영화를 훨씬 무서워한다.) 그리고 귀신이 주가 되느냐, 사람이 주가 되느냐도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 서양은 <쏘우>처럼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주가 되는 공포 영화가 강세이고, 동양은 <링>, <셔터>처럼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가 강세인 것 같다. 이는 동양보다는 서양 고어물이 더 많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귀신’ 카테고리는 또 ‘오컬트, 심령’ 카테고리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또한 서양과 동양의 분위기가 현저히 다르다. 서양의 심령 공포영화라고 하면 당장은 <컨저링>, <파라노말 액티비티>, <엑소시스트> 같은 것들이 떠오르고, 오컬트 영화라고 하면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 <미드 소마>가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양의 오컬트는 좀 더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느낌이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나 그가 참여했던 최근작 <랑종> 같은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봤던 <주>라는 대만 영화도 대단했다. (정말 무서웠다는 뜻이다.)
또 사람의 정신을 파고드는 류의 공포영화도 있다. 이런 류의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이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관람자로 하여금 누군가의 의식을 집요하게 쫓아가도록 한다. <샤이닝>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일본 공포 영화 <큐어>도 이런 식이다. 파운드 푸티지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장르도 있다. <블레어 위치>, 잘 알려진 <곤지암>도 이런 장르에 속한다. 그냥 화면을 보면서 영화 자체를 쫓아가는 게 고통스러운 무시무시한 영화들도 있다. <마터스>나 <안티크라이스트> 같은 영화들이 내겐 그러했다.
물론 나는 호러 마니아 수준은 아니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좀 끔찍한 영화도 무리 없이 좋아할 뿐이다. 나는 왜 그런 끔찍한 이미지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것을 즐길까? 애초에 사람들은 왜 공포영화를 제작하며 기꺼이 그 공포를 느끼는 것에 동참하는 것일까?
답에 앞서 덧붙여보자면, 나는 공포게임도 좋아한다. 직접 하는 것보다는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스팀 게임에 관심이 없거나 게임 방송 유튜브 영상을 즐겨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어떤 공포게임들은 영화보다도 더 큰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어떤 게임들은 생각보다 심오한 의미와 은유들을 내포하고 있다.
공포게임은 공포영화보다 훨씬 직설적이다. 영화나 책과는 달리 콘텐츠에 직접 참여해서 그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주체의 일부분이 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심지어 내 선택에 따라 결말도 바뀐다.) 이는 어쩌면 영화보다도 인물이나 현장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또한 이미지는 상당히 직관적인데, 나는 괴기스러운 상상력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어두운 일면을 형상화시키는 몇몇 게임의 능력에 매번 감탄한다. 어린아이의 악몽이기도 하고, 암울한 시대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하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그로 인한 끔찍한 죄책감이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트라우마가 담긴 무의식의 파편이기도 한 어둠들이 기발한 형태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내가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은 못 견디게 매력적이다. 나는 그 기괴함이 내 내면의 검은 부분을 응시하는 것을 느낀다. 그것들은 꼭 너에게도 그런 심연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화면으로부터 오는 말초적인 쾌락, 혹은 점프 스케어에서 한바탕 놀라고 난 후에 느끼는 안도감(어차피 다 허구야, 라는)과 서늘함도 물론 공포물의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모든 공포영화도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공포는 멀리 있지 않다. 평범한 일상에서 비져 나온 어긋남이 점점 무언가를 망가뜨릴 때, 인간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인간의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영화 속에서 귀신은 어떤 이유로 살아있는 사람의 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것인가. 공포물에는 인간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불쾌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나 게임을 즐기는 데에 반해 그다지 공포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는 공포물의 시각적인 이미지에 자주 매혹되는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의 풍경에 섞여 든 불길하고 소름 끼치는 무언가의 이미지는 나를 자주 상상력의 늪으로 데려간다. 이를테면, <미드 소마>의 한 장면 같은 이미지가 그러하다. 아름답고 푸른 한여름 대낮의 대자연이 별안간 살육과 광기의 중심이 될 때의 짜릿함 같은 것. <미드 소마>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공포영화가 어떤 식으로 매혹적인 끔찍함을 드러내는지. 가장 소름 돋는 구간은, 줄곧 주인공에 이입하며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이 비정상적이고 잔인한 사이비 집단을 이해할 것만 같다는 감각을 느낄 때다. 공포물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