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고 신이 있어서 선善이 있는 세계라면, 신이 선에 물질성을 부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으로 떨어진 여러 선한 존재들이 있다면, 그중의 하나는 분명 나의 고양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것을 죄다 끌어모은 덩어리에 따뜻한 털가죽을 입힌 존재.
종종 생각한다. 언젠가 이 존재가 지상을 떠난다면, 그 털가죽을 훌렁 벗고 원래 있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상상 속에서 이 고양이는 옷을 벗듯 그 삼색 무늬 털가죽을 벗어 고이 접어 둔다. 털가죽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희끄무레하고 새하얀 빛덩어리는 너무나도 빛나서 나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고.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 밖에는 못하는 것이다. 네가 있어야 했던 곳으로 가는구나. 지상에서의 잠깐의 소풍은 행복했니, 중얼거리면서.
이 고양이와 나는 길에서 만났다. 2019년 어느 날, 새로 이사 갈 집을 보러 가는 데 길목의 담벼락 위에 동상처럼 앉아있었다. 길고양이치고는 푸짐한 덩치에 순한 초록 눈, 삼색 카오스 등판. 내가 다가가니 피하지도 않고 담벼락 아래로 내려와 몸을 부벼댔다. 내가 만난 길고양이 중에서 가장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나는 녀석을 얼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얼룩이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특히나 나를 더 좋아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를 골목에서 마주치면 야옹 거리면서 몸을 치대고, 가지 말라며 집 앞까지 다급히 따라오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집의 공동현관 앞까지 따라와서는 내가 집에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앉아있다 돌아갔다.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갑자기 야옹 대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를 만나면 반가운지 아스팔트 도로에 발라당 드러눕고 까슬한 혓바닥으로 손등을 핥아댔다.
나는 얼룩이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 사랑인가. 나도 얼룩이를 사랑했다. 태풍 때문에 심한 비바람이 몰아친 밤이 지나고, 얼룩이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돼서 어느 날 밤엔 조금 울었다. 다음 날 아침에 걱정이 무색하게도 얼룩이는 담벼락 위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고르릉대고 그 초록 눈을 깜빡거리면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할 때가 오자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녀석을 데려가기로. 우리 집에는 이미 개 두 마리가 있었기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맞물려서 데려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곳에 그대로 두고 갔다가는 오랜 시간 동안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약 7년 여 간을 길고양이로 살아온 고양이에게서 일종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것이 얼룩이를 위한 길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삿날이 임박해 오던 어느 날, 오랜 시간 얼룩이를 돌봐주었던 캣맘 아주머니에게서 얼룩이의 원래 이름을 전해 들었다. 콩이. 얼룩이에게는 콩이라는 귀엽고 번듯한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으로 오면서 얼룩이는 다시 콩이가 되었다.
집고양이가 된 지 2년쯤 된 콩이는 여전히 자주 야옹 댄다. 그때마다 꼭 대답을 해주곤 한다. 꼭 내게 무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사랑이 가득 담긴 말이겠지. 그 눈동자를 오래도록 마주 본다. 처음엔 그저 초록색 눈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올리브 색인 그 눈을. 인간의 눈과는 너무도 다른 눈인데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너는 사랑이 무언지 모를 텐데 어떻게 나를 사랑하는 거니. 너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이토록 다른데 너는 어째서.
발을 만져도, 발톱을 깎아도, 눈곱을 떼려 얼굴을 부여잡아도, 싫어하는 방식으로 들어 올려도, 그러안으며 귀찮게 굴어도, 분홍색 뱃살을 주물럭대도, 물이 뿜어져 나오는 샤워기를 들이대도 어떠한 공격성도 보이지 않는 이 순하디 순한 생명체는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꼭 알아달라는 듯이 나지막하게 야옹, 우는 콩이는 외로움이 뭔지도 다 아는 것 같다. 외로움은 알면서도 폭력성은 모르는 동물은 늘 버겁다. 버겁게 안쓰럽다.
묻고 싶다. 콩이야, 행복하니. 언젠가 네가 그 털옷을 벗고 하늘로 올라가는 날에, 내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니. 너에게 내가 말년의 전부여서 다행이었다고. 길거리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했다고.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순한 고양이. 거친 길에서 생활하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고양이.
나의 고양이야말로 천사의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