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즈 앤 올> (2022) 을 보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다.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의 주제곡이다. 래드윔프스가 부른 그 곡의 제목은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 번역하면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이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노래도 다 불러버렸어, 수 많은 영화로 다 말해 버렸어. … 그래도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어‘ 라는 가사가 유독 떠올랐다.
사랑을 말하는 예술은 끝없이 변주되고 반복된다. 사랑 영화는 차고 넘치는데다가 그게 성장이라는 주제와 맞물린다면 더욱 더 보편적이다. 더이상 낯설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식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있어도 그러하다. 두 사람이 고독한 은하계를 표류하다 충돌한 행성처럼 서로에게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뼛속까지 나눌수있는 유일한 이들이 되어주더라도. 그런 사랑 영화는 흔하다.
누군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펑펑 울었다는데, 나는 울지 않아서 되려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가 내게 너무 진부하게 다가왔던걸까. 고심 끝에 내린 답은, 영화의 태도가 뜨거웠다는 것. 감독의 시선이 충분히 따뜻했다는 것. 어떤 사랑 영화는 영화 자체가 그 사랑을 축복한다. 비극적인 후반부조차 그렇게 느껴졌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주 멀리서부터 들판에 앉은 메런과 리를 비추며 줌인한다. 장소나 그들의 옷차림을 보아서는 오랜만의 재회 후 서로에게 사랑을 다짐했던 그때인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사랑 안에서 가장 뜨겁고 충만했던 때. 카메라는 놀랍게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줌인하여 지켜볼 뿐이다. 그들의 평화로움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러한 시선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랑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어쩌면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과, 그들의 가장 강렬한 본능인 식인 식성을 겹쳐 놓은 이유도 그것일지 모른다.
영화관을 나올 때 가장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정말 낭만적인 사람 같다는 것. 특히나 후반부의 연출이나 그때 리의 대사는 놀랄 정도로 직설적이고도 감성적이다. 하지만 그게 뻔하다거나 세련되지 못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그의 재능이겠거니 싶었다. 마치 <콜미바이유어네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오가 사랑의 슬픔으로 온 얼굴이 젖도록 우는 장면이 전혀 과하다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처럼. 루카 구아다니노는 여름을 가장 잘 담아내는 감독이라는 칭호를 받곤 하는데, 그건 어쩌면 여름의 찬란하고 뜨거운 이면에 자리한 날카로운 성장통까지 담아낼 줄 알아서가 아닐까. 어떤 고통의 이면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래서 감독은 그것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꽤나 낭만적인 방식으로.
어쩌면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직도 사랑으로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고. 사랑은 어떤 형태를 띄던간에 늘 여름처럼 찬란하리라고. 그러니까…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