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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Apr 27. 2022

나는 공부가 좋다

마흔에도 여전히 꿈꾸는 둔재의 이야기



세상에 많고 많은 잘난 사람들


잘난 사람은 세상에 정말 많다. 작년엔 코인으로 몇십억, 많게는 몇백억을 벌고 퇴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단순히 뜬소문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경로로 확인하기도 했다. 부동산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다는 사람들, 또 주식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유튜브나 인스타 같은 SNS를 활용해서 부를 일군 사람들, 또 사업이나 인터넷 쇼핑몰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이들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이런 부를 일궈내기도 한다. 내 나이쯤 되니, 이미 직업적으로 성공한 또래들이 사회 곳곳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쯤 되면 "나는 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던 거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가난과 싸우며 공부했던 시간들


그렇다면  지금까지 뭘하고 살았을까? 나는 20대 시절 내내 공부만 했다. 심지어 지금도 공부 중이다. 스무살 이후 쭉 거의 20년을 공부를 해온 셈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뜸 "집이 잘 사나 보네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내가 공부에 열중했던 시간 내내 나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니, 늘 매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매우 좋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위태위태한 줄다리기를 하며 공부를 하고, 또 했다. 하나의 학위를 끝내면 그 다음 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내 본업이 강사인지 학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공부를 잠시 멈추고 돈 버는데만 집중했더라면 오히려 더 결과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의 나는공부를 잠시라도 그만두면 다시는 공부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사실, 중간에 그만뒀다면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좋아하는 둔재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딱히 공부에 엄청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둔재에 가까웠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접할 때 받아들이는 시간이 남들보다 몇배나 오래 걸린다. 공부를 할 때에도 새로운 분야로 넘어갈 때마다 꽤 오랜 기간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공부를 계속한 이유는 그나마 내가 할 줄 아는게 공부밖에 없었고, 그나마 내게 비교우위가 있는 것이 공부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공부하는게 좋았다. 


10년이 늦은 삶이지만


그렇게 박사과정까지 다니고 3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취업을 했을 때, 세상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매분 매초 변화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10년대는 이미 강산이 몇번은 변한 것 같았다. 세상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지만 나의 세상만 멈춰있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적어도 10년 이상 뒤쳐진 삶을 살게 된 나에게 사람들은 "공부가 그렇게 좋으냐," "이제는 그만 해도 되지 않느냐," "그런거 해서 뭐하냐"는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놓고 싶지 않다. 남들보다 느리고, 남들처럼 빠른 속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공부하고 싶다. 적어도 내게는 공부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될 수 있어서, 그래서 좋다. 내게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거라는 희망이 없는 삶은, 살아 있어도 산게 아니다. 그런 삶은 내게 곧 죽음이다.  


어차피 안되는건 없다


나는 올해 미국변호사를 준비하며,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비웃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안될거라며 그냥 인생을 즐기라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도 잘 안다. 남들보다 모든게 한참 늦은 지각인생이고, 이미 뛰어난 사람들 틈에서 나같은 둔재가 살아남는 게 로또 확률이 가깝다는 것을. 또 지금 하는 일들이 정말 내 인생을 나아지게 해줄지 여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무엇보다 인생은 먼저 앞서간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나같은 지각생에게 남은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나에게는 나만의 레이스가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내 처지가 남들에 비해 초라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내 자신의 삶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다.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이라도 매일 한 걸음씩은 나아가고 싶다. 남들이야 정상에 미리 도착해있든 말든, 나에게는 나만의 레이스가 있다. 내 레이스를 어떻게 펼칠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이 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기대된다. 가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 기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럴땐 옆으로 난 다른 길을 가면 된다. 길은 많고, 그 길들은 어디로든 이어진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남들이 뭐라 하든 내 꿈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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