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확신, 그리고 그냥 하는 것
간만에 영화를 봤다. "F1 더 무비"라는 영화인데, 제목에 F1이 들어가고, 브래드피트 주연에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영화는 사고로 F1에서 은퇴한 드라이버 소니 헤이즈가 30년만에 F1에 복귀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극중 브래드피트가 연기하는 소니 헤이즈는 간만에 참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다. F1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지만, 어느 필드든 아무리 과거에 난다 긴다 했다고 하더라도 30년이라는 공백을 극복하고 복귀한다는 건 유니콘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극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일련의 사건들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내 마음을 크게 동요시켰다.
"사람들의 함성, 환호는 그저 다 소음(noise)일 뿐이야. 레이스에 집중해" 라는 대사와, "플랜 C는 그냥 싸우는거야(Plan C is for combat)"라는 대사는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다. 30년 공백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레이스에서 이기는 것에만 사력을 다하는 소니의 모습에 나는 큰 용기와 깨달음을 얻었다.
최근에 흥미로운 뉴스를 보았다. 폐경이 된 이후 60이 다 된 나이에 기적적으로 쌍둥이를 임신한 어느 여성분의 이야기였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며 난임병원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일인으로서, 이 여성분을 비롯한 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또 그 이후 찾아온 아기들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지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에 달린 댓글들에는 이 케이스는 아웃라이어일 뿐 모두가 이런 기적을 바랄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여성이 이미 한번 폐경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무려 2년간 엄격한 식단, 운동 등 자기관리를 한 뒤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의학적으로 35세 이상이면 가임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노산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 후반의 나이에 꺾이지 않고 시도한다는 것. 과연 내 경우라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여성이 아웃라이어로 분류되는 지점은 그녀가 58세에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점이 아니라, 정말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했다는 사실 아닐까.
학부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강좌는 교양강좌였던 "영어회화"였는데, 그 수업의 원어민 선생님은 영어회화 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많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절대로 나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놓인 현실, 지금의 나, 그리고 나를 평가하는 따가운 시선들 속에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 일인지를 지난 이십여년간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며 절실히 깨달은 지금에 와서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말이다.
지난 세월동안 수많은 도전에서 깨지고 넘어지고 부침을 겪으면서, 내 스스로 "이건 안될 것 같아..."라는 생각에 빠져 그르친 일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나 30대에 겪은 가장 큰 실패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너무 약해진 나머지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패배감을 안고 도전을 했을 때 찾아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안될건 또 뭐냐 싶은데, 그냥 그 때 내 그릇이 딱 그정도밖에 안됐던 것 같다.
십여년전,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항상 "죽음(死)"이라는 키워드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마지막 눈 감는 순간에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를 늘 한켠으로 생각하곤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을 굳이 벌이고 한번씩 해보는 것도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죽는 순간 눈을 감으면서 정말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최근에 출산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생(生)"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큰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아이를 낳고서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내가 적어도 내 어머니에게만큼은 엄청난 기쁨이었겠구나, 나의 삶이 참 감사하게 받은 것이구나, 그래서 이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알차게 써야겠구나, 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생(生)과 죽음(死)의 사이에 놓여있는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결국 나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내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은 늘 나 자신이었다. 생(生)은 그 자체만으로 내게 큰 선물을 주었고, 이 받은 것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죽음(死)의 순간은 후회로 점철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진지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남들의 말, 시선, 세상의 잣대 등등은 모두 noise일 뿐이다. 그러니 플랜C를 밀어 붙여 열심히 싸워볼 수 밖에. Combat! Comb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