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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Jul 27. 2022

장대높이뛰기와 같은 인생

장대높이뛰기 선수 듀플랜티스의 세계 신기록 달성 장면을 보고


출근길에 무심코 유튜브를 켜서 여느때처럼 내 알고리즘에 업데이트된 영상들을 확인했다. 그 중 '인간새'라는 자막과 함께 장대높이뛰기를 하고 있는 듀플란티스의 썸네일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홀리듯 이끌려 클릭한 영상 속 듀플란티스는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승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이미 실내 6m20, 실외 6m19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듀플란티스는 5m70부터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뿐한 성공이었다. 다음은 5m87이다. 듀플란티스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의 높이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가볍게 성공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가 착지 과정에서 잘못 건드린 가로대가 떨어지며,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도전했고, 무난하게 성공했다. 그가 뛴 높이는 5m87을 훨씬 넘고도 남았다. 


이후 그는 6m를 가볍게 성공하고, 그의 경쟁자들이 6m에서 연달아 실패하면서 그의 금메달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비록 메달 획득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여정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6m6이라는 대회 신기록에 도전했다. 결과는 역시 성공이었다. 이 기록은 2001년 에드먼턴 대회의 기록이 25년만에 경신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날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6m21이라는 엄청난 높이에 도전했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는 실패한 기록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그는 잠시 경기장 안을 거닐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는지, 다시 한번 장대를 들고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전세계가 그를 숨죽여 지켜본 순간, 그는 긴 장대로 도움닫기를 하고 뛰어올랐다. 아쉽게도 1차 시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6m21은 넘을 수 없는 벽인 걸까? 


이런 실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코를 찡긋하며 고개를 까딱하더니, 그가 다시 일어나 장대를 손에 쥐었다. 다시 한번 힘차게 달린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6m21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높이가 아니라는 것을 전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그는 6m21의 높이에 있는 가로대보다 8cm나 더 높이 뛰어올랐다. 이는 실내외 통합 세계 신기록이다. 그 순간, 내가 이뤄낸 성공도 아니고, 경기를 직관한 것도 아닌데도, 가슴이 뭉클하더니 눈물이 쏟아져내릴 것 같았다. 장대뛰기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담긴 듀플란티스의 피땀흘린 시간들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다 이해될것만 같아서였다. 또한, 그가 얼마나 이 순간을 간절히 원했을지도 가슴으로 절절히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을 통해 그의 모든 고독한 순간들과 외롭고 힘들었을 인생을 그려볼 수 있었다. 



장대높이뛰기라는 종목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다. 인생에도 늘 순간순간마다 가로대가 놓여있다. 그 가로대가 1m 정도의 해볼만한 높이에 있을 때도 있고, 6m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것만 같은 높이에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것 같아보이는 높이라고 해서 포기해버린다면, 나는 영영 그 높이를 넘을수 없을 것이다. 1차시기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또 실패하고 말것이라는 마음속 두려움의 목소리를 이겨내어 2차시기에 도전해야 한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할 때까지 뛰고, 뛰고, 또 뛴다. 그리고 그렇게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의 기록이 경신된다. 기록을 경신하고도 안주하지 않고 또 도전하면, 더 높이 뛸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수백만번쯤 내 인생의 장대높이뛰기를 했던것 같다. 그 중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남들만큼 높이 뛰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 스스로의 기록은 꾸준히 높여왔다. 앞으로도 나만의 기록을 경신하고, 또 경신할 것이다. 언젠가는 듀플란티스가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던 그 2초간의 순간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에 내 인생이 모두 설명될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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